시사

누라씨, 힘내길! (경향신문, 7월 9일)

검하객 2014. 7. 11. 09:23

ㆍ한국 온 팔레스타인인 누라가 전하는 ‘점령지’ 현실

9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든 팔레스타인 여성이 서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극우 유대인들에게 산 채로 화형당한 팔레스타인 16세 소년 아부 크다이르의 사진도 들려 있었다. 한국을 방문 중인 누라(30·사진)는 전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가자지구 침공 태세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시민단체인 ‘팔레스타인 평화연대’가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가자지구 공습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는 “외부에서는 이·팔 양측이 ‘폭력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표현하지만,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은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집단처벌’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누라와의 일문일답이다.

 


- 이스라엘이 가자를 타깃으로 한 지상전 준비에 나서고 있다.

“나의 집은 이스라엘 영토인 북부 하이파에 있지만, 친척들이 가자지구에 많이 살고 있어 걱정된다. 내일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지만 오늘 당장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컸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주는 한국 시민들을 보니 한결 용기가 난다.”

- 지난달 12일 유대인 청소년 3명이 납치·살해된 사건 이후, 팔레스타인 소년이 납치당해 숨지는 보복공격이 벌어졌다. 극우 유대인들의 공격이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는데.

“ ‘아랍인은 죽여도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극우파들의 선동이 끊이지 않는다. 2주 전에는 유대 극우파들이 몰려와 하이파의 우리 마을과 모스크를 불태우려 했다. 그날 이후 우리 동네에 마을 방위대가 조직됐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서안이나 가자지구에는 마을 방위대가 일상화됐지만 하이파 같은 ‘48년 지역’(그는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하면서 이스라엘 영토가 된 땅을 이렇게 불렀다)에서까지 마을 방위대가 조직된 것은 이례적이다.”

- 아부 크다이르의 죽음 후 팔레스타인들의 분노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은 많은 사람들이 체포될까 두려워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글조차도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크다이르의 죽음 후 확연히 달라졌다. 어제도 하이파에 있는 내 친구 5명이 항의 시위를 준비하다가 체포됐다고 한다. 팔이 부러지거나 머리를 꿰맨 친구들도 있다.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 이러다가 3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 분위기가 2001년 2차 인티파다가 시작될 때와 매우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나는 17살이었다. 그때 같은 반 친구가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아픈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 그동안 쌓여온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가 크다이르의 죽음을 계기로 폭발하는 것 같다.

“나는 서안이나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달리 이스라엘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그런 나조차 이스라엘에서는 3등 시민에 불과하다. 땅을 살 권리도 없고, 맥도널드 아르바이트 일자리조차 얻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하이파에서 한 택시기사가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했다. 나 역시 우체국에 갔다가 아랍어로 말한다는 이유로 유대인에게 폭행당한 적이 있다. 이스라엘 경찰에게 신고했지만, 경찰은 나를 공격한 유대인에게 가서 어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을 뿐이었다.”

- 국제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제발 침묵하지 말아달라. 이 부조리에 계속 침묵한다면 그 대상이 언제 당신이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