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닮고 싶은 사람, 이항복

검하객 2014. 12. 9. 12:45

 글쓰기와 말하기가 다르듯, 논문 쓰기와 강의는 다르며, 당연히 논문과 강의안도 달라야 한다. 이항복,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는 행복하다. 존경하는 스승을 찾아가는 길처럼, 마음이 통하는 벗과 한잔 술을 나누는 듯한, 또는 저물녘 숲에서 길 잃은 나그네가 불빛을 발견한 듯한 ---. 이항복의 일부를 다시 엮어보았다.

 

 

섬세하고 다정한 시인의 면모

 

 

버려진 아낙 棄婦

 

추운 날 지는 해에 가는 연기 일어나는               天寒落日細煙生

초가집서 쓸쓸하게 베틀 소리 울리누나             白屋蕭蕭機杼鳴

베개 위 원앙이 말을 할 줄 안다면                      枕上鴛鴦若解語

첩 신세 남김없이 전해 달라 하겠건만               爲敎傳道妾分明

 

무제 無題

 

서강의 젊은 아낙 물결 따라 걷는데               西江少婦步沿流

강 위의 연기 물결 만 겹의 시름일세              江上煙波萬疊愁

가는 배 바라보며 나그네 불러 묻길                   遙望行舟試喚客

우리 신랑 어느 날에 충주를 떠났나요               問郞何日發忠州

 

무제 無題

 

달 질 제 서상에서 선 채로 헤어지던                  落月西廂立別離

파리하게 병든 얼굴 그 모습 떠오르네               病顔憔悴記當時

꽃다운 마음으로 내생 약속 믿었거니            芳心定信來生約

저승길 떠나가며 뒷날을 기약했네                     先向冥道作後期

 

무제 無題

 

떠날 때 어린 자식 아비 옷 당기면서                 來時稚子挽爺衣

지금 가면 언제나 돌아올지 물었는데              問余今行幾日歸

복사꽃 가리키며 지기 전에 온다 하고             共指碧桃花未落

복사꽃 다 지도록 아직 기약 어기었네             碧桃花落尙違期

 

 

무제 無題

 

군문에서 걸어 나와 잠깐을 머무는데             步出轅門爲少留

마부가 수레 내며 어서 가자 하는구나            僕夫催我啓征輈

여윈 말들 헤어지는 사람 맘을 아는 듯이           羸驂似解離人意

구비 시내 안 건너고 짐짓 물을 마시누나          不渡回溪故飮流

 

 

너그러우면서도 강직한 관료의 풍모

 

 

? 수초(守初) 조존성(趙存性 1554~1628), 인수(仁叟) 송영구(宋英耈 1555~1620)와 함께 한강 가에서 독서하던 중, 여러 날 배를 찾았지만 구하지 못하자 수초가 울적한 마음에 이 몸이 큰 배가 되어 바람을 타고 물결을 헤쳤으면!’이라고 탄식하니, 내가 장난삼아 시 두 수를 지었다 (1578 무렵)

與守初仁叟同在江舍 數日索舟不得 守初甚欝欝 歎曰 安得身爲巨艦 乘風破浪 余戲而作此

 

언제나 원하기는 만곡의 배가 되어 常願身爲萬斛舟

중간의 너른 곳에 타루를 세우고서 中間寬處起柁樓

때 되면 나그네를 모두 다 건네주곤 時來濟盡東南客

저물면 고요하게 떠있는 것이라오 日暮無言穩泛浮

 

? 1592618일 새벽 정주성 남문에서, 이항복은 명에 원병을 청하러 떠나는 이덕형을 전송하였다. 이덕형이 날쌘 말로 이틀 길을 하루에 가지 못하는 것이 한이라고 하자, 이항복은 타고 있던 말을 풀어주며 말했다.

원병을 청해오지 못하면 그대는 나를 쌓인 시체더미에서나 찾을까, 살아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이네.”

이에 이덕형도 말했다.

원병을 청해오지 못하면 나는 반드시 뼈를 노룡(盧龍, 산해관 안에 있는 고을로 지금의 永平市)에다 버리고 다시는 압록강을 건너지 않을 것이네.”

두 사람은 눈물을 뿌리며 작별하였다. (백사집3, 이덕형묘지문)

 

? 89일 풍을 맞아 장난삼아 짓다 八月初九日 中風 戲成 (1617, 62)

 

운명 믿어 평생토록 시름을 몰랐으니        信命平生不解愁

이 몸이야 세상에서 한 척의 빈 배인 걸       是身於世一虛舟

60년 인생사를 떠올려 돌아보니              思量六十年前事

어이없어 웃을 뿐 말하려다 그만두네          欲說應須失笑休

 

? 광해군일기 9(1617) 1124/ 오성 부원군(鰲城府院君) 이항복이 의견을 바쳤다.

 

신은 89일에 중풍(中風)이 재발하여 몸은 죽지 않았으나 정신은 이미 탈진된 상태입니다. 이 문제는 국가의 대사인 만큼 남은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감히 병들었다고 핑계대면서 잠자코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마땅히 효도로 나라를 다스려야 온 나라가 앞으로 점차 감화될 가망이 있을 터인데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해서 전하에게 이르게 한단 말입니까. 자식된 도리는 능히 화평함으로 효도를 다하여 노여움을 돌려 사랑하도록 만든 우순의 덕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신이 소망하는 것입니다.”

 

철령(鐵嶺) 높은 재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孤臣寃淚)를 비 삼아 띄어다가

님 계신 구중궁궐에 뿌려본들 어떠리 (정충신, 북천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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