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배웅하러 창계에 갔다가 배를 놓아 낭주(閬州로) 돌아오다
두보, 送客至蒼溪放船歸閬 (763)
창계 와서 손님을 배웅했는데 送客蒼溪縣
산은 차고 비는 개이지 않아 山寒雨不開
말을 타면 미끄러질까 直愁騎馬滑
배를 놓아 돌아가누나 故作放船回
푸른 산들 아쉽게 지나가더니 青惜峰巒過
황금빛 귤과 유자 멀리서 오네 黃知橘柚來
강물은 절로 절로 매임이 없어 江流大自在
뱃전의 마음 또한 멀리 흘러라 穩坐興悠哉
763년 두보(712~770)가 52세에 지은 시로 전해진다. 안록산 사사명의 난이 끝난 시점이 763년 2월 17일이니, 그 해 늦가을의 일이다. 두보는 낭주(閬州, 지금의 閬中縣, 창계현 남쪽)에 있었고, 손님을 배웅하러 蒼溪縣에 갔다가, 비가 오고 날은 차니 말을 두고 배를 띄워 다시 낭주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 지은 것이다. 푸른 산들이 뒤로 지나가는 것이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앞에 노랗게 익은 귤과 유자나무들이 경이롭게 다가온다. 강물은 고요하게 매임 없이 흐르니, 배 위에 앉은 사람의 마음도 강물처럼 아득하게 흘러간다. 떠난 손님에 대한 아쉬움일까,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일까, 뜻 같지 않은 인생사에 대한 사념일까? 초로에 접어든 두보의 마음이나 내 마음이나.
박사과정 유학생 韓東이 고향 창계를 소개하며 보인 글이다. 그러고 보니 한동을 만난 지도 5년은 족히 되었다. 학부 때 만났는데 벌써 박사과정이고, 그 사이에 결혼도 해서 아이도 낳았다.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눈동자가 커서 서역 상인이 떨어뜨린 종자가 아니냐고 놀려온 터다. 학위를 받고 돌아가면 고향에 놀러갈 테니 모른 척하면 안 된다고 눌러 다짐을 받아왔다. 뒷날 우리를 외면해도 괜찮으니 모쪼록 건강하게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서 그리운 가족과 살을 부비며 살기를! 고향에 있는 가족들도 모두 평안하기를!
아래 지도에 보이는 파란 물줄기가 嘉陵江이렸다. 臨江古渡란, 가릉강 가의 두보가 배를 띄웠던 옛 나루터란 뜻이겠지. 창계현 아래에 낭중현이 보인다. 지금 이 계절 배 위에 앉아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귤과 유자 나무 숲을 경이롭게 보는 두보의 모습이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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