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일을 당하는 것은 보통의 경우에서 마이너스, 즉 결핍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이는 비교 열등의 상태를 의미한다. 심리적 결핍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힌다. 여기서 빠져나오려면 마이너스를 상쇄할 수 있는 플러스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삶이 평형 상태에 놓이게 되고, 버텨나갈 힘을 얻게 된다. 11월 16일 운동을 하다가 손목을 다쳤다. 골절! 18일 수술하고, 2월 2일 실밥을 풀고, 15일에 기브스마저 풀었다. 한달 동안 왼팔을 온전히 쓰지 못했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3주가 더 필요하다.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기간 술을 마시지 않아 간장 상태가 좋아졌고, 시간이 많아져(운동을 쉬면서) 강의준비에 충실할 수 있었으며, 차분하게 생활을 정돈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말해준다. "다리가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엥? "왼손이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엥? "한여름이 아니라서 다행이군요!" 엥? "허리나 엉치뼈였으면 어쩔 번했어요!" 엥? 아, 이런 걸 '多幸'이라고 하나보다. 불행한 일은 하나였지만, 그 안에 여러 행운이 들어 있으니 말이다. 그래봐야 이 다행을 담고 있는 그릇은 '부상'이라는 불행이다. 다행을 느끼며 마음의 평형을 유지했고, 생활을 겸허하게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행운이라는 여러 손님이 불행이라는 배에 타고 있는 셈이다. 이 배를 다시 타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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