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등심지가 다 타가던 1885년 경상도 성주에 살던 文漢命(1839~1894)이란 분이 "後歎先生訂正註解西廂記" 작업을 마치고 서문을 지었다. 문한명은 성탄의 후신을 자처할 정도로 김성탄에 매료된 인물이다. 서문을 짓고 독법을 새로 썼으며 범례도 붙였다. 성탄을 존숭하여 그 체제를 따랐지만, 정작 성탄의 평어는 모두 빼고 자신의 주해를 달았다. 음양의 조화와 男女의 搆精은 자연의 이치이자 인정의 대욕으로, 천만년 전이나 뒤나 누구라도 배우지 않아도 능히 알고 행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으로 그 일을 제대로 그려낸 것은 찾을 수 없다. 그는 서상기야말로 남녀간 애정을 제대로 그려낸 천하의 일대 조화문자라고 했다. 이 시기 경상도 산골에서까지 서상기가 인기리에 읽혔던가! 의아하기도 하고, 아직도 "서상기"를 최고 조화의 문자로 여길 만큼 식견이 좁았던 게 안타깝기도 하다. 원본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2006년에 이미 정용수 선생에 의해 번역되어 출간되었는데(국학자료원)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 언제 어디서고 자기 지식이란 건 믿을 게 못된다. 서문을 읽으며 원문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낑낑거리며 입력해보았다. 일부만 옮겨놓는다.
기이하구나 이 일이여, 기이하도다 이 일이여.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지어지고 언문 주해가 붙게 된 연유이다. 중국 유자의 방언과 송나라 스승의 어류, 고악부와 원나라 희곡의 노래마다 기묘한 말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문리를 통하거나 구두가 끊어지는 경우가 드무니 어떻게 자세하게 읽어 곡진하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남녀가 서로 기뻐하는 일이이라 대수롭게 여길 게 아니라고 하다면이야 그만이지만, 그 뜻을 깊이 통하고 마디마디마다 의심이 없고자 한다면, 이 책을 두고 달리 무슨 방도가 있으랴! 이는 교묘한 말로 표현하거나 이름난 그림으로 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경전과 사서의 문장과도 다르니, 지혜로운 마음과 영험한 눈, 그리고 비단같은 心口가 아니라면 쳐낼 것은 쳐내고 자를 건 잘라내어 반점 억지스러운 맛이나 인위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으랴!
異哉此事也, 異哉此事也. 此是書之所由作而諺註之所由起也. 自非深得於華儒之方言, 宋師之語類, 與夫古樂府元人曲, 章章妙妙之詞, 則鮮或通其文理, 斷其句讀, 其安能看得仔細, 說得丁寧乎. 若謂之男女相悅之事, 無所事於珍重, 則已矣. 苟欲通其深意, 節節無疑, 則其又舍是書, 奚以哉. 此非巧言之所能盡, 名畵之所能載, 又萬萬不近乎經史文義, 則苟非慧心靈眸, 心口如錦, 又安能摑血條棒, 打斷明快, 無半點兒牽强之味, 斧鑿之痕乎.
문한명은 이를 출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시기 조선의 경제 상황과 경상도의 출판시장은 그리 녹록했을 거 같지가 않다. 10년 전에 김성탄을 만났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 뜨거운 여름에 김성탄 본 "서상기"를 읽으며 그 낯선 용어와 구문과 씨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서상기의 장면 장면을 환히 외고 있었는데, 세월 속에 모두 망각에 묻혀버렸다. 이제 또 다른 인연(韓婷婷)으로 춘향전을 꺼내 펼쳤고, 서상기도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새 책을 읽는 것은 새 벗을 만나는 것과 같고, 옛 책을 읽는 것은 옛 벗을 만나는 것과 같으니, 새 벗을 만나기는 쉬워도 옛 벗을 만나기는 어렵다고 했던가! 묵은 인연이 삶속에 새로워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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