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런(eirôn)은 고대 그리스 희극의 세 유형 인물(stock characters) 중 하나이다. eirôn은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있다가 허세 넘치는 상대자 알라존(alazôn)을 폭락시키는 데 성공한다. 에이런은 아리스토파네스의 여러 연극에서 발견된다. 이를테면 희극 The Frogs에서, 디오니소스 신이 Cleisthenes와 함께 적선 열두 척을 침몰시켰노라고 주장한 다음 장면에서, 그의 노예인 크산티아스(Xanthias)가 말한다. “Then I woke up.” 이걸 뭐라 해석해야지. “아함, 잘 잤다!” 아니면, “시끄러워 잘 수가 없네!” 어쨌거나 크산티아스(?)의 대사는 디오니소스 발언의 허세를 폭로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누가 알려주길!)
에이런은 겸손한 약자이지만 총명한 인물이고, 알라존은 자만과 허세의 강자이지만 실상은 우둔한 인물이다. 에이런과 알라존은 대결을 벌이고, 패배할 것처럼 보이는 에이런은 알라존의 허약한 실상을 폭로하면서 승리를 거둔다. 에이런은 능력을 감추고 어리석은 척하거나, 진의를 반대의 행동으로 감추었다가, 결국은 승리를 거두는 인물인 셈이다. 이처럼 외관상의 약자가 승리를 거두고, 속 의미에 의해 표면의 의미가 뒤집어지는 그리스 희극에서 ‘에이로네이아(eironeia)’라는 말이 생겼다. 에이로네이아는 위장, 은폐, 시침 뗌 등의 의미를 지녔다.
에이로네이는 플라톤의 『공화국』에도 나온다. 여기서는 소크라테스의 대화술에 걸려 자신의 무지가 폭로된 사람들이 그를 헐뜯는 뜻으로 사용했다. 사실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모르는 듯 이야기하다가 대화 과정에서 상대방의 무지가 절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소크라테스 아이러니(Socratic irony)라고 한다. 이 단어는 19세기 낭만주의 시기에 문학비평의 중요한 용어로 거듭나고, 이후 문학은 물론 철학에 있어서도 숨어 잘 드러나지 않는 삶과 세상의 실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의미가 크게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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