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푹 쉬었다. 11시에 숙소를 출발, 공관에 들러 대형 버스로 요양을 향해 출발했다. 공관 직원들, 한중우호 관련 단체의 임원들이 동승했다. 2층 대형 버스에 50명 가량이 탑승했다. 공관 앞에서 기다리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도시락을 드시다가 말을 건다. 흑룡강 대동시에서 10여 년 전 심양에 와, 공관에서 비자 신청을 대신 해주는 일을 해주고 있단다. 한 건에 20원을 받는데, 근래에는 일이 없단다. 짠하다. 얼마 안 있어 버스가 출발했다. 혼하를 건너고 火燒橋 자리를 지나, 白塔堡의 탑 앞에서 약식으로 사행단축제의 개막식을 거행했다. 노일전쟁의 격전지였던 沙河堡를 지났고, 십리하보에서 길이 막혀 장시간 정체했다. 옛날에는 진창으로, 지금은 공사로 인한 차량 체증으로. 누르하치 동생의 무덤이 있는 古陵村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접시꽃은 따사화, 양귀비는 띵구화라고 하는데 어떤 한자어인지 알지 못하겠다. 동경성 뜰은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담을 두르고 입장료를 받던 백탑 일대는 담을 터서 공원화했다. 그 앞에는 대형 야시장이 들어서 있다. 백탑 맞은편의 요양빈관에서 만찬. 10여 년 전 이 빈관 8층인가에서 백탑을 안고 잠들었던 적이 있고, 그 앞 골목길에서 당나귀 고기에 백주를 마시고 대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녕성 한중우호협회장(?) 曲金洋 선생 덕분에 크게 취했다.
정체
심양에서 백탑보를 지나 요양 가는데, 옛날 사행이 진창으로 고생했던 십리하에서 길이 막혔다. 창 밖의 풍경은 멈추고 버스안의 시간은 조금씩 뒤로 흐르기 시작했으니, 마음의 중력에도 파동이 일어 낯선 홀로 빠져 들었다. 기를 모아 연개소문 시절 백암성이나, 발해 시대의 동경성, 아니면 1712년 노가재 사행 속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세상 일 어느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법. 몸은 노일전쟁 시기 전장 한 복판에 포탄과 함께 떨어졌다. 기겁하고 달아나 다시 앉은 데는 하필 약탈하다 쫓기는 마적단 끄뜨머리 말 궁둥이였다. 느닷없이 총알이 뒤에서 날아오자 말은 엉덩이를 털어 나를 떨어뜨렸고, 땅에서 구르고 보니 차창 밖의 건물은 그대로 있고 옆 사람의 하품은 끝나지 않았다.
백탑보의 백탑, 복원된 지 얼마 안 되었다. 숙소에서 바라본 혼하.
동경성 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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