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전인가, W와 함께 경안천 둑길을 걸었다. 바람은 선선하고 달도 밝으니 절로 걸음이 느긋했다. 문득 W가 말했다. "이런 길이면 밤새 걸어도 좋겠는 걸!" 그러자 98년엔가 나주가 고향인 한 여학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희 집은 나주읍에서 달빛 밟고 배밭 길을 10리는 가야 해요." 이 한마디 말은 순간 내 머리에 각인되어, 그 후로도 난 그 여학생(지금은 물론 아니지만)만 보면 '달빛 밟고 10리 길'을 말하곤 했다. 또 이어서 그 1주 전에 다녀온 나주 여행이 떠올랐다.
나주는 임제(林悌, 1549~1587)의 고향이고, 그의 유택도 이곳에 있다. 채 40년도 채우지 못한 임제가 우리 문학사에 남긴 족적은 꽤나 뚜렷하다. 다시면 회진리 영산강 가에 있는 백호문학관에 관객은 하나도 없었다. 학예사마저 자리를 비웠다. 차라리 그 적막이 좋았다. 난 여기서 그의 짧은 노래 <無語別>의 지리적 뿌리를 발견했다. "열다섯 아리따운 소녀가, 남사스러 말없이 헤어지고선, 돌아와 중문을 닫아 걸고선, 배꽃달을 보면서 눈물 흘리네. 十五越溪女, 羞人無語別. 歸來掩重門, 泣向梨花月." 이화월은 배꽃처럼 하얀 달일 수도 배꽃 사이 달일 수도 있다. 아마 임제에게 배꽃달은 관념적인 상투어가 아니었을 것이다. 화제는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로 이어졌다. 이날 밤 짧은 경안천 둑길은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였고, 우리의 산책은 承天寺의 夜遊였다.
어제 퇴근 후에 다시 W와 함께 이웃 마을의 주루를 찾았다. 달빛 아래 길은 이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어 불과 서너 달 전의 운치는 모두 없어졌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슬럼프'란 단어가 쑥스럽게 기어나왔다. "뭔가 전환, 진화, 정리가 필요한 시점 같은데, 안개 속처럼 길이 보이지 않아." W는 문득 1주일 전의 산책길을 이야기했다. 그날 참 좋았다고, 임제의 무어별 얘기가 재밌었다고. "그랬어?" 그러자 그날 밤 바람의 부드러운 촉감과 함께 영산강의 고운 몸매가 떠올랐다. 바람이라야 새어나갈 만한 틈이 이화월에 보이는 듯했다. 주루에 도착했다. 소주의 첫맛이 달콤했다. 배가 고팠던지라 여느 때에는 많아 남겼던 돈까스 안주를 싹 비웠다.
백호문학관에서 잡은 영산강, 오른쪽 상류에 영산교가 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영산포, 나주역, 나주읍이 차례로 나온다. 영산강 가 풍호나루터에서 잡은 백호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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