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대에 다녀오는 길에 잠깐 병산서원에 들렀다. 다락은 晩對樓, 두보 시의 "翠屛宜晩對"에서 가져왔다고. 아래 흐르는 물은 낙동강. 뜰에는 모과가 익어가고 있었다. 하늘과 모과의 빛이 서로를 비춰주었다. 세상에 모과 향만한 게 또 있을까? 강당은 立敎堂.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까지는 낙동강을 따라가는 10리 오솔길이 이어진다. 조만간 이 길을 걸을 것을 내게 약속했다. 청량산에서 발원한 물은 도산서원 아래를 지나 이곳에 이르고, 또 하회마을을 품고 흘러 문경 영순면 남쪽에 이르러 학가산과 소백산과 태백산 등지에서 흘러운 물과 만나 한 몸이 된다. 이로부터 비로소 몸집을 키워 실개천의 물들을 품어 구미 성주 고령 창녕 밀양 양산 땅을 빠짐없이 입맞춤하면서 김해를 통해 남해로 들어간다. 안동대도 풍산면도 병산서원 모두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하지만 이렇게나 아름다운 대한민국에 독재의 바이러스가 만연하고 있다. 이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한 이 곳은 지옥이다. 일제강점기인들, 한국전쟁기인들, 군사독재 시기인들, 이 강산이 언제 아름답지 않았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