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도깨비의 어원

검하객 2015. 10. 26. 22:19

 따지고 보면 내가 세상에 대해서 아는 건 거의 없다. 비슷한 음가를 가진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도깨비'의 정체도 사실은 오리무중이다. 혹부리영감 이야기에서처럼 이마에 뿔이 나고 방망이를 든 도깨비 형상은 일제시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에 가장 근사한 옛 문헌의 기록은 1459년에 간행된 "월인석보"이다. 이 책에서는 魅를 '돗가비'라고 풀이하였다. 휴우, 이 책이라도 있어 크게 다행이다. 아직 전산화되지 않은 한글 문헌에 비슷한 명칭이 더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첫번째 등식이 나온다.

 

  魅 = 돗가비

 

 <고려사>에서는 이의민을 소개하면서, 경주 사람들이 豆豆乙이라 부르는 木魅를 집에 맞아들여 모시고 있었다고 했고, 또 木郞卽木魅라고도 하였다. 여기서 두 번째 등식이도출된다.

 

  豆豆乙 = 木郞 = 木魅

 

  이학규는 <洛下生集> 冊 6, [嶺南樂府] 鼻荊郞에서 "鼻荊郞 或稱木郞 亦名豆豆里."이라고 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21의 경주부 조에서는  "영묘사(靈妙寺) ---  속설이 전하기를, “이 절 터는 본래 큰 못이었는데, 두두리(豆豆里)에 사는 여러 사람들이 하루 밤 사이에 메우고 드디어 이 불전을 세웠다.” "왕가수(王家藪)  ---  고을 사람들이 목랑(木郞)을 제사지내는 곳이다. 목랑은 속칭 두두리(頭頭里)라고 한다. 비형(鼻荊)이 있은 이후로 세속에서는 두두리를 섬기기를 매우 성대하게 하였다." "鬼橋 --- 경주의 풍속에 지금도 이 가사를 문에 붙여서 귀신을 쫓는다. 이것이 동경 두두리(豆豆里)의 시초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들을 종합하면 또 다른 등식이 하나 나온다. 

 

  鼻荊郞 = 木郞 = 豆豆里 

 

두두리는 나무와 관련된 신격임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세 명제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새로운 등식이 만들어진다.

 

비형랑 = 豆豆里(豆豆乙) = 돗가비 = 木郞(木魅, 魅) ≠ 독각귀(獨脚鬼)

 

하나 더 고려할 것은 獨脚(鬼)에 대한 기록이다. 독각귀는  이른 시기 중국의 문헌에 보인다. (俞琰 《席上腐谈》卷 上:“独脚鬼乃山魈,见道家《烟萝子图》,连胲一隻脚. 故 唐 诗有‘山鬼趫跳惟一足’之句. ” 宋 陆游 《送子龙赴吉州掾》诗:“波横吞舟鱼,林啸独脚鬼.” 독각귀에 대한 기록은 우리 문헌에도 꽤 많고, 일부 중국 사이트에서는 이를 한국의 귀신으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獨脚鬼(dújiǎoguǐ)는 발음도 도깨비와 비슷하고 형상도 막대기나 몽당 빗자루 등으로 나타나는 우리 도깨비의 형상과 비슷하여, 둘 사이의 연관성을 고려할 수 있다.

 

양은용은 돗가비를 돗구(杵, 절구궁이) + 아비(성인 남성)로 보았다. 절구공이를 든 남성, 절구공이를 담당한 남성, 쇠를 두드리는 남성, 또는 그 물건 자체. 강은해는 이 견해를 받아들여, 두두리는 절구공이를 두드리는 형상에서, 돗가비는 절구공이를 두드리는 주체에서 나온 말이며, 그 기원은 같다고 풀이했다. 흥미롭다. 이젠 고전 한글 문헌에서 돗가비, 도깨비, 독갑이, 도가비, 도개비, 독개비, 도채비, 허깨비, 허채비 등의 단어를 건지는 일이다. 찾아 헤맬 수는 없는 일이니, 그물을 쳐놓고 걸리기를 기다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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