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단강 편지

三劍樓隨筆을 읽는 시간 (9.18)

검하객 2016. 10. 3. 13:29

 중추절 연휴 첫날 늦은 오후, 학교 앞 명주광장에는 나물을 다듬는 아낙들이 곳곳에 진주처럼 빛나고, 자작나무 그늘 아래서는 몇몇 신선들이 바둑 아닌 카드놀이를 한다. 선계도 시속을 따르거니. 난 등받이 나무의자를 골라 앉아 三劍樓隨筆을 읽는다. 거기엔 묵은 시간들이 바위 아래 沼처럼 머물듯 흐르고 있다. 이야기는 정처가 없어, 청나라 초 요절한 천재 詞人 納蘭容若의 저항과 우수를 엿보다가, 신을 믿지 않았으며 신을 믿지 않는 것을 불안해했던 허먼 멜빌의 옷자락을 건드려본다. 아예 의자 위에 드러누웠다. 뉘 날 알아볼 것이며, 알아본들 무어 대수랴. 거울 위로 黃賓虹은 바둑을 두고 오청원은 그림 위에 시를 적는다. 낯선 거리 사람들은 조금도 새롭지 않고, 묵은지 청국장 낡은 시간들은 외려 친숙치 않다. 고추잠자리가 스치듯 책 위에 앉았다 날아간다, 빛나는 권태의 시간, 나른하고 명징한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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