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육사의 반려동물

검하객 2017. 9. 10. 20:38

 

이육사의 안동 도산면 고향 집에는 두 마리의 반려동물이 살고 있다.

하나는 얼룩무늬 고양이, 반묘(斑猫)이다. 이 녀석에게는 사막의 나라 유폐된 후궁의 넋이 담겨 있어 몸도 마음도 근심스럽다. 칠색(七色) 바다를 건너 멀리 왔지만, 눈동자는 아직 고향의 황혼을 간직하고 있다. 잔조로운 목소리로 노래하며 끝없이 게으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뜰 안에 흰 나비가 날아올 때 한낮의 태양과 한 송이 튤립을 지키는 정도이다. 하지만 흰 나비는 튤립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니 지킬 필요가 없고, 태양은 굳이 지키지 않아도 아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고양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근심스러운 모습으로 아주 가느다란 목소리로 노래하며 게으름을 한껏 드러내는 게 고작이다.

다른 하나는 박쥐이다. 이 놈은 광명을 배반한 깊은 동굴 속에 산다. 쥐도 달아나고 대붕도 떠나갔지만, 이놈은 한 번도 사랑을 속삭여보지 못한 채 동굴 속에 머물러 있다. 뜨거운 정열의 불사조도 못되고, 피 토하며 깊은 속내를 울어대는 소쩍새도 되지 못해, 아이누 족속처럼 동굴 속에서 멸망해가고 있다. 새들에게도 사람에게도 가녀린 말이나 눈웃음 표정으로 아양 떨지 못하여, 다시 동굴로 돌아가는 검은 화석(化石)의 요정이다. 떠나지도 못하고, 서러운 주문도 못 외고, 피 흘려 노래도 못하고, 구애의 표정도 짓지 못하며 깊은 동굴 속에 침묵으로 머물러 있는 게 전부이다.

강철 무지개 시인의 반려동물 치곤 뜻밖에 나약하고 소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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