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조조(曹操, 155~220)의 詩

검하객 2017. 11. 19. 18:13

 

  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난세의 간웅으로 일컬어졌던, 꾀와 의심이 많기로 소문났던, 잔혹한 보복을 일삼았으면서도 끝내 황제의 자리에는 오르지 않았던, 조조는 시인이기도 했다. 그의 시로 남아있는 것은 26수이다. 이름난 시인에 비하면 몇 수 되지 않지만, 제왕으로서는 파격적으로 많은 작품이다. 분량을 떠나 그의 시에는 佳作이 많아 널리 애송되어왔다.

 

  독 안에는 한 되 곡식이 없고         甕中無斗儲

  상자 속엔 한 자 비단이 없네         發篋無尺繒

  벗이 와 얼마라도 내놓으라니        友來從我貸

  이거 참 뭐라고 말을 할 거나         不知所以應

 

  제목이 <요속사(謠俗詞)>이니 '풍속 노래'란 뜻이다. 내 살림도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듯한데, 친구가 찾아와 얼마라도 좋으니 곡식을 빌려달란다. 선뜻 내주자니 식구 먹을 게 없고, 그렇다고 사정 들어 거절하는 것도 구차하고, 하여 잠시 말을 잊는다. 난세에 또는 빈한하게 살다 보면 비슷한 경우를 겪을 터인데, 권세 있는 환관 집안에서 자랐으며, 젊어서부터 관직에 나아갔던 그가 어떻게 이런 시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늙은 준마 마굿간에 엎드렸으나      老驥伏櫪

  뜻은 능히 하루에 천리를 가고        志在千里

  뜨거운 선비 나이는 들었지마는      烈士暮年

  장사의 마음은 그칠 날 없어라        壯心不已

 

 위는 <步出夏門行>의 일부이다. 앞에는 "신령스러운 거북이 오래 산다고 하지만 죽을 때가 있고, 용이 구름을 탄나고 하나 끝내는 재가 된다."는 뜻의 네 구절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늙고 쇠약해져서 사라지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의 운명이다. 준마는 이제 늙어 몸은 마굿간에 엎드려있지만 생각 같아서는 한 달음에 천리를 갈 수 있을 듯하고, 뜻 높은 선비는 나이가 들었지만 젊은 시절 품은 마음은 여전하다. 노년의 의기가 뜨거운데, 그 배면의 노쇠와 설움이 먼저 감지되는 건 왜일까!    

 

  동쪽으로 갈석산 위에 올라서         東臨碣石

  남쪽의 푸른 바다 바라보노라         而觀滄海  

 

  207년 북쪽으로 烏桓 원정에 성공하고 돌아오는 길에 碣石山 위에 올라 남쪽으로 발해를 바라보며 지은 시로 유명하다. 갈석산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으나, 최근에는 昌黎縣의 그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진시황을 비롯 여러 황제들은 동쪽으로 가서 바다를 보았는데, 그건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다. 야심이 유난히 컸던 조조에게 있어, 바다 체험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당시 조조의 나이는 53세였다.

 

  술 마시며 노래하자           對酒當歌

  인생이 얼마나 되나           人生幾何

  아침 이슬 같은 신세          譬如朝露

  가버린 날은 많고              去日苦多

  마음에선 뜨거운 불길        慨當以慷

  시름 잊기 어려워라           憂思難忘

  무엇으로 시름을 풀까        何以解憂

  두강이 있을 뿐이라           唯有杜康

                 …

  달은 밝고 별은 드무니       月明星稀

  까막 까치 남으로 날아       烏鵲南飛

  나무 둘레 세 바퀴 도나      繞樹三匝

  어느 가지 깃들리오           何枝可依

  산은 아무리 높아도 되고    山不厭高

  바다는 깊을수록 좋으니     海不厭深

  주공의 토포 행동에           周公吐哺

  천하 마음 돌아갔다지        天下歸心

 

  조조의 시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단가행(短歌行)> 32구 중, 초반 8구와 종반 8구이다. 짧은 인생의 서글픔을 술 마시며 노래하여 풀어내는 내용으로 시상을 일으키고는, (함께 술자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정되는) 인재들에 대한 고백으로 넘어간다. (青青子衿, 悠悠我心. 但爲君故, 沉吟至今.) 가운데 16구는 이들에 대한 고백과 구애의 내용이다. 마지막 8구는 걱정 말고 자기에게 오라는 당부이다. "삼국지연의"에는 이 시가 적벽에서 불리어진 것으로 설정했지만, 내용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지어진 것이 분명하다. 

  半語隻句, 一嚬一笑면 한 사람을 알기에 충분한 경우가 있다. 조조는 시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