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간호사 랫치드는 매일 환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는데, 각자 자기 약점을 고백하게 하고, 그 약점을 서로 공격하게 하여, 점점 더 무력하고 규율에 순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회의에 처음 참여한 맥머피는 그 과정을 지켜보고는, 치료를 내세운 학대이자 선의로 가장한 폭력이며, 가학과 자학의 꼬리물기라고 보았다. 그는 동료 하딩에게 이렇게 말한다.
닭들이 동료 닭의 몸에 피가 조금 난 걸 보고는 그것을 쪼려고 우르르 갑니다. 그 닭이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쪼아대는 거요. 급기야 피가 철철 흐르고 뼈가 드러나고 깃털이 뽑혀요. 하지만 그런 소동이 벌어지고 나면 보통 두서너 마리의 닭이 피가 묻어 얼룩덜룩해져요. 그러면 이제 그 녀석들이 당할 차례가 되는 거요. 그래서 다른 몇 마리가 또 피 얼룩이 묻고, 쪼여서 죽고, 그런 식으로 가다 보면 점점 더 많은 닭이 죽어 없어집니다. 쪼아 대기 시작하면 몇 시간 만에 닭이 전멸되지요. 그걸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무시무시했소. 그걸 막는 유일한 방법, 그러니까 닭들에게 쓸 수 있는 방법은 눈가리개를 씌우는 거요. 그러면 앞을 볼 수 없을 테니까." (정희성 옮김, 민음사, 101쪽)
맥머피는 이러한 학대의 시발점을 랫치드로 지목했고, 그녀를 괴물닭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저 간호사는 괴물 닭이 아니라 고환 잡아먹는 괴물이오. 그런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봤어요. 늙은 사람, 젊은 사람, 남자, 여자 다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전국 어디에서나 봤고, 고향에서도 봤어요. 그들은 사람의 기력을 약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그 사람이 그들이 정해놓은 규칙과 명령을 따르고, 그들이 조종하는 대로 살게 만든다고요. 그런데 그렇게 만드는 방법, 그러니까 사람을 굴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아픈 곳을 잡아서 힘을 못 쓰게 만드는 겁니다. (위 책, 104,5쪽)
작가 켄키지는 이 작품에서 통제 수단과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시각'의 작용을 의미 있게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병원에서는 환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밤마다 분무기를 사용하여 병실을 안개로 채우곤 하는데, 이는 서술자 브롬든이 해외 공군기지에서 근무할 때 거기서 사용하는 방법과 흡사하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각을 사용하는데, 그럴수록 시스템에 길들여지게 되니, 차라리 눈을 감는 게 좋았을 것이라고 한다. (15회)
우리는 시각으 힘으로 세계를 이해하지만, 때로는 시각 때문에 빛에 현혹되어 이용되거나 순치되기도 한다. 가끔 박지원이 '소경'을 등장시키고, 어떤 철학자가 멈춰 서서 생각하라고 권고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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