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행복 강박증

검하객 2018. 6. 10. 11:18

 

  카페에 앉아 있다보면 유난히 목소리들이 큰 옆자리 손님들과 함께 할 때가 있다. 내가 집에서 자주 가는 곳은 노인 일자리 창출 목적으로 시청에서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나이 든 손님들이 많은 편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주위도 쾌적하고, 분위기도 편안하여 자주 이용한다. 그런데 유난히 목청을 높여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싸움의 내용은 이런 거다. "나는 잘 살고 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성공했다!" 그건 일종의 과시이자 선언이며, 확인이다. 왜 사람들은 자기 삶의 자족성, 완결성에 집착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조금 더 듣다 보면(사실은 폭력적으로 들리는 것), 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성공이고, 성공의 근거는 '재산'이며, 재산의 소유는 '여행과 음식'으로 실천된다. 종종 여행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재산이 있다는 증거이고, 성공의 표지이며, 행복의 요건인 셈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행복에 집착할까? 세상의 수많은 요란한 담론들도 대개는 주제가 '성공'과 '행복'으로 수렴된다. 성공은 외적 요소이고, 행복은 이로써 발생하는 심리 현상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교과서에서 "인생의 최고 덕목은 행복이다." 이런 명제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고, 급격한 산업화 경제 성장 속에서 자본제일주의가 몸에 배었다. 재산을 축적한 사람은 그를 통해 행복을 증명하려 하고, 그게 여의치 않은 사람은 다른 대체자를 마련하여 계속 행복이라는 주술을 건다. 사회가 각박할수록, 경제가 어려울수록, 그 주술의 강도는 더 높아진다. 사람들은 별로 행복하지 않은 표정으로 행복을 강변하고 주장하고, 나아가서 교화하거나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행복'은 목표가 되고, '이념'이 되고, '당위'가 되며, '추상'이 된다.

  '행복(幸福)'이란 단어는, 비슷한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근대 일본에서 'happy'를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happy는  명사인 hap에 형용사 어미 -y가 붙으면서 짧은 모음 때문에 p가 겹쳐 써진 것이라고 한다. (예: fun / funny). 명사 hap은 북유럽 언어인 Old Norse에서 온 단어로 운(chance), 사건(occurrence)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Good hap and evil hap"이라고 하면 '행운과 불운'을 의미한다고 한다. happy의 원래 뜻은 '우연한' (coming or happening by chance) 혹은 '운이 좋은' (having good 'hap' or fortune)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한'이란 뜻은 사라지게 되고 '운이 좋은'이란 뜻만 남았는데, 의미는 확장되어서 현대에는 '행복한' (having a feeling of great pleasure or content of mind)로 쓰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번역어에 사용된 '幸'의 의미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얻거나, 벗어나기 어려운 일인데 벗어나는 경우"를 뜻하는 글자였다. [非所當得而得,與不可免而免曰幸] '福'은 신에게 지내는 제사 또는 제물이라는 뜻에서, 나중에는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이라는 뜻으로 전용되었다. 뒤에는 우리 삶에 필요한 조건들을 갖추게 됨을 의미하게 되었다. [福者備也. 備者百順之名也. 無所不順者之謂備, 按福備古音皆在第一部.] 적어도 근대 이전 한국의 문헌에서 '행복'이 지금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그 뜻이 happy의 그것과 비슷하니, 번역 과정이 허술하지 않았음을 알겠다. 어쨌든 happy든 幸福이든, 그 원래의 뜻은 "운이 좋아 얻게 된 결과나 조건"이 된다. 그 결과로 발생하는 좋은 감정이나 정서가 곧 행복감인 셈이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할 때는 대개 후자의 심리 현상을 의미한다.

  각설, '행복한 삶'은 일종의 강박증 아닐까! 끊임없이 행복을 과시하고 주장하며 확인하는 것은 일종의 심리적 투쟁이고, 강박증상이며, 죽은 언어에 매여 있는 것이다. '성공'과 '행복'이란 두 단어를 빼고 우리 삶을 표현하거나 설명할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해본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 그것은 삶의 방법이자 목적  (0) 2018.06.10
무진과 삼포  (0) 2018.06.10
죽은 언어의 사회  (0) 2018.06.09
강경애와 뤄빈지(駱賓基)  (0) 2018.05.30
  (0) 2018.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