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공은 국문학, 즉 한국문학이다. 학부 시절에는 국학을 한다는 그 자체에 어떤 (실체 불분명한, 물려받은) 소명의식이나 자존감 같은 게 있었고, 대학원 시절에는 어둠(무식)에서 벗어나기에 여념이 없었고, 학위를 받은 뒤에는 취직을 위해 맹렬하게 논문을 쓰느라 다른 걸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 사이에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내 지식은 대부분 유효기간이 지난 것들이 되었다. 내 감성은 종종 철지난 것으로 조롱받고, 내 신념은 적응하지 못하는 고집으로 자조의 대상이 되곤 한다.
실패한 인생을 자처하고, 행복과 성공 담론을 뱀 보듯 싫어하니, 세상에 팔 성공과 행복이라는 물건도 없다. 목은이 지었다는 시조, "백설이 잦아진 곳에 구름이 머흘레라 /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 석양에 호올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의 주인공이 딱 내 신세이다. 헌데 타고난 허무감 속에 겨우겨우 이 삶을 지탱하게 해주었던, '문학'과 '학문'에 대한 자기 기만적인 신념이라도 없다면, 삶의 발 밑이 그대로 무너질 것이다. 어쩐다? 일단은 좌표와 목적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문학? 왜 이런 걸 공부하지? 이렇게 정리해보았다.
"문학, 그것은 우리 삶의 방법이자 목적이다."
문학의 방법으로 직장을 다니고 장사를 하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며, 궁극에는 글을 사용하여 자기 삶을 표현하고 세상을 구성하는 목적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직업을 구하고 수익을 얻지? 안타깝지만 내 문학에는 그런 게 없다. 치명적인 급소이며, 충족 불가능한 결핍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각자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