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풍경 2, 靑袍 입은 손님과 白馬 탄 초인

검하객 2018. 10. 31. 11:25


  여행 이틀째인 25일 새벽, 숙소는 內蒙古大廈. 崇文門內大路 동쪽, 東單公園 맞은편에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길은 옛날 조선 사신들이 오가던 길이다. 사신들은 동사패루에서 동단패루를 지나 호텔 앞 길을 지나 숭문문 앞에서 동쪽으로 꺾어 東江米巷 거리로 접어들었다. 오전 일정은, 걸어서 동단패루, 장안가, 왕푸징 거리, 청대 乾魚胡同이었던  甘雨胡同 거리에 가서 천주고 동당을 확인한 뒤, 東廠胡同 28호의 일본영사관 자리까지 가는 것이다. 1944년 1월 16일 이육사가 삶을 마친 곳이다. 육사의 시를  한 줄 한 줄 읽고 가슴에 새겼다.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 기다리던 손님이 고달픈 몸으로 靑袍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을 함뿍이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집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두렴." 아! 그동안 한 번도 현현하지 않았던 청포 입은 손님이 내 앞에 나타났다. 한 수 더.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앗을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올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그러자 말 발굽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청포 입은 손님과 백마 탄 초인, 육사가 간절하게 기다리던 분이다. 동창호동 28호 건물은 다행히 그대로 남아있었다. 벽을 타고 올라간 덩굴풀은 잎이 바랬고, 머리 위 포도넝쿨에는 시든 포도가 몇 송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어느 방에선가 트럼펫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