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史는 모두 참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럼 모두 거짓인가? 그것도 아니다. 거짓을 버리고 참만 남겨놓는가? 그럴 필요 없다. 經書는 理를 드러내고 史傳은 事를 풀어내는데, 그 법도는 똑같다. 理가 드러난다고 세상이 다 갈고 닦는 선비가 되지 못하고, 事가 기술된다고 하여 사람들이 모두 博雅한 유자가 되지 않는다. 里婦估兒는 甲是乙非로 기뻐하고 성내며, 前因後果로 교훈을 알고, 道聽塗說을 학문으로 삼으니, 通俗演義는 경서와 사전의 부족함을 돕기에 충분하다. 사실을 가지고는 금궤석실에서 빠진 것을 기울 수 있고, 꾸며진 일로는 激揚勸誘, 悲歌感慨의 뜻을 激揚할 수 있다. 眞贋은 상관없다. (<경세통언서> 1624)
김성탄은 『수호전』 1회에 등장하는 史進의 ‘史’를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寓言과 稗史 또한 史라고 하였다. 記事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종래의 서인들이 펼쳐낸 의론은 모두 史이다. 무슨 근거로? 천하에 道가 있으면 庶人이 함부로 議論하지 못하지만, 천하에 도가 없으면 비로소 의론을 펼친다. 왕도를 상징하는 王進의 퇴장과 高俅의 등장은 천하에 도가 없음을 나타낸다. 王進과 史進을 첫머리에 내세움은,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稗史이지만 또한 엄연한 역사임을 드러낸 것이다.(1642)
→ 정치 이상이 실현되었던, 하지만 입증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고시대를 제외한 모든 시대는 無道이다. 인류의 역사는 거의 모두 도가 없는 시대이고, 서인들이 나름의 의론을 펼쳐낸다. 그것은 우언이고 패사인데, 또한 史이다. 패사는 이상시대 국가 또는 군주에 의해서 지어진 史와 동등한 위상을 지닌다. (김성탄, 수호전1회 총평)
稗史 小史 外史 小說 雜錄 野言 野談 雜記, 叢錄, 稗說
패사와 소설은 통칭되거나 합칭될 때가 많다. 구분 없이 쓰였다는 것이다.
1487년 曺偉는 「筆苑雜記序」에서 『역옹패설』을 두고 ‘當世의 遺史’라고 했다. 『필원잡기』를 두고는 “他日太史氏紬蘭臺蓬觀之藏, 其將無取於是也乎.”라고 했다. 이는 패설이 지닌 遺史와 史料의 속성을 지적한 것이다. 역사의 보완, 역사의 자료. 성현도 「村中鄙語序」(1496)에서 한대 이래의 다양한 記事文들이 조정 밖의 일들을 기록하여 野外의 일들을 알게 해주었으니, 勸戒에도 관계되고 國乘에도 도움이 되었다며, 六經 외에는 모두 쓸데없는 글이라는 가설(통념)을 반박했다. 패사는 실제 있었던 일을 기록하지만, 국가 기관이나 군주의 명을 받은 사관이 지은 글이 아니기 때문에 稗 자를 붙인 것이다. 대부분은 기사, 즉 사실 기록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려가 편찬한 「古香屋小史」와 「丹良稗史」나, 그가 패사로 지칭한 동각잡기 등은 모두 기사 정신에 입각해서 지어지고 이해된 것이다. 아래 정사룡(1491~1570)의 글은 史와 稗史의 대립적이면서 상보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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