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擇細流

史와 稗史, 史記와 遺事, 역사와 소설의 대립성과 상보성 (정사룡의 <어면순서>)

검하객 2012. 10. 18. 12:52

 

  선비로서 재주와 국량을 품었으되 시절에 쓰이지 못한 자는 반드시 소설에서 노닐며 그 뜻을 붙이기 마련이다. 보는 자가 글에서 골계만을 알고 뜻을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람을 살필 수 있겠는가? 醉隱 선생(宋世琳, 1479~?)은 당세에 명망이 높았다. 약관을 넘자마자 과거에 으뜸으로 급제하였으니 재주와 국량을 갖추었다 할 만하다. 불행히 병에 걸려 시골에 묻혀 살았는데 이어 갑자년의 사화를 당해 끝내 세상에 뜻을 끊고 말았으니 때에 쓰이지 못했다고 하겠다. 몸조리하는 틈틈이 시골의 우스개 이야기들을 모아 한 책으로 만들었으니 모두 82화이다.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기도 하고, 이야기만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놀이에서 출발했지만 권계하는 뜻도 안에 들어있다. 호남에서 시작하여 서울에까지 퍼졌다. 읽다가 눈이 휘둥그래져 크게 웃으며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치며 지루함을 잊었으니, 그 의의가 졸음을 막는 정도이랴! 아, 선생으로 하여금 史局에서 난신적자를 적발하여 논죄하게 하였거나, 諫院에서 글을 다듬고 정사를 의론하게 했다면, 옥당에서 종이를 펼치고 군영에서 말에 기대 큰 붓에 먹묵을 적셔 아름다운 글을 짓게 했다면 어찌 이런 일을 일삼았으랴! 선생의 재주가 때에 쓰이지 못했으니 뒷 세상에 남긴 것이 이런 검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또한 이 책으로 인하여, 그가 재주와 국량을 갖추고도 끝내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니, 인재를 쓰는 위정자를 위한 경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생의 막내 아우 대사헌 송헌숙 공께서 이 책을 간행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려고 하면서 내게 발문을 부탁하기에 감히 사양하지 못해 이처럼 그 대략을 적는다.

 

  史와 稗史의 관계는 운명적이다. 애초 역사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권력은 국가의 전유였다. 국가의 위임을 밭은 관리만이 역사를 기술할 수 있었다. 그러니 역사서에 오르는 내용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그 관점 또한 독선적이고 배타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그물망은 너무 넓어 커다란 물고기 외에 작은 물고기들은 모두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역사기록에 오르지 못하는 인물과 사건과 행적들은 모두 기억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인가? 사람들에게는 의식 무의식적으로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기 주변의 인물과 사건과 행적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구전으로 떠돌기도 하고 문자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이런 이야기들은 국가의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지만, 한 시대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매우 적절했다. 역사기록을 보완하기도 하고, 다른 관점을 보여주기도 하며, 그 허위를 폭로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런 기사문이 지닌 史의 속성을 간파하였으되, 질이 떨어지거나 내용이 순수하지 않다고 하여 앞에 '稗' 자를 붙여 稗史라고 했다. 패사는 또 다른 역사였다. 그래서 遺史, 逸史, 小史, 外史 등으로 일컬어졌다. 小說, 稗說, 野言, 雜記 등으로도 불렸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를 둔, 또는 사실이라고 간주된, 아니면 사실과 관련 있는 것이라고 믿어졌다. 

 근대적 의미의 소설, 즉 자본의 발달이라는 역사 단계에서 처음부터 그리고 모두 허구라는 속성을 지닌 소설은 稗史의 형제로 동거해오다가 차츰 차츰 분리되어 독립하기. 살림을 따로 내긴 했지만 둘은 여전히 피를 나눈, 뿌리가 같은 형제 사이이다.   

 

 

 『湖陰雜稿』 권 8, 「書禦眠楯後」. “士之抱才器而未施於時者, 必遊戲於小說, 以寓其意. 覽者徒知滑稽於文, 而不究其指, 則何足以觀人乎. 醉隱先生有當世重名, 纔踰弱冠, 便捷魁科, 可謂才且器矣. 不幸嬰疾, 屛居田里, 繼以甲子之禍, 遂絶意人世, 可謂未施於時矣. 將息之餘, 收拾村野戲談, 著爲一錄, 摠八十有二款, 或附其議斷, 或只敍其事. 雖本於遊戲, 而勸戒之意, 實寓乎其中. 始自湖南, 流傳京師, 讀之者刮目解頤,不覺擊節忘倦, 豈止禦睡魔而已哉. 噫, 使先生誅姦發潛於史局, 剡章論事於諫院, 其或揮翰玉堂, 倚馬戎幕, 濡染大筆, 以摛其華藻, 則奚事於是錄哉. 先生之才, 旣不時施, 其所遺後者, 不過此毫芒. 然亦因是可知有是具而不竟其用, 未必不爲用人者之戒矣. 先生之季, 今都憲宋公獻叔, 謀印行以廣於世, 以跋囑余, 余不敢辭, 遂識梗槩如右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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