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擇細流

삼국지연의 주요 무대

검하객 2012. 9. 1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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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탁 암살에 실패한 조조는 고향 譙郡(商丘市 남쪽 毫州)으로 달아나다가 中牟縣(鄭州와 開封 사이)을 지나는 중 관문의 군사에게 사로잡혔다. 현령 陳宮이 구해주고 함께 떠난다. 사흘만에 成皐(상구 근처?) 땅 呂伯奢으 집에 도착한다. 일가족 몰살. (4회) 이때 조조를 떠난 진궁은 下邳城(徐州市 북쪽 古邳鎭) 싸움에서 패배하여 사로잡힌다. 진궁은 4회에 등장하여 19회에서 사라진다.

 

 

  조조에게서 세 가지 다짐을 받고 유비의 두 부인과 함께 許都에서 머물던 관우는 袁紹 군과의 전투를 통해 유비가 하북에 있다는 걸 알고 재물을 봉하고 인끈을 걸어놓고 두 부인을 모시고 길을 떠난다. 허도는 許昌으로 196년 조조가 獻帝를 맞아 천조한 곳이다.

제 1관. 東嶺關. 허창 서북쪽 80km 지점, 白沙水庫 서쪽 둑 산.

제 2관

제 3관. 沂水關(汜水關). 滎陽市 가까운 곳. 鎭國寺.

제 4관. 滎陽

제 5관. 滑州. 安陽市 남단. 지금은 황하 북쪽에 있음. (연의에는 황하 남쪽에 있는 것으로 기술)

 

臥牛山(邢台市 隆堯縣) 산채의 周倉을 만나다. 關定의 아들 平을 양자로 삼고, 와우산에서 조자룡을 만나다.

 

 

  남양 땅 隆中의 제갈량 집 기둥에는 “淡泊以明志, 寧靜以致遠.” 글귀가 씌어져 있었다. 명지는 담박이 아니면 안되고, 치원하기 위해서는 영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담박은 화려함과 달콤함을 경계한다. 영정은 잡다함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조조군에게 크게 패한 뒤 공명은 동오로 손권을 만나러 간다. 손권과 만나기 전 오나라의 책사들과 논쟁한다. 嚴畯이 물었다. “治何經典?” 대답한다. “尋章摘句는 腐儒의 일이니 어찌 나라를 일으키고 사적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薪 땅에서 농사지었던 伊尹, 渭水에서 낚시질했던 강태공, 장량이나 진평 등은 우주를 바로잡는 재주를 지녔지만 그들이 평생 어떤 경전을 익혔는지는 들어보지 못했다. 글귀나 고르고 먹 장난이나 하는 서생을 배워서야 되겠습니까?” (44회)

 

 

  관우는 呂蒙의 꾀에 빠져 참수되었다. 關平도 함께 죽었다. 건안 24년 12월. 荊門州 當陽縣 玉泉山의 노승 普靜은 사수관 진국사에서 관우에게 위험을 알려준 사람이다. 관우가 밤에 나타나 “내 머리를 돌려다오!”라고 소리치다. 또 “願求淸海, 指點迷途.” 대답했다. “昔非今是를 일체 따지지 마라. 後果前因은 彼此不爽이다. 지금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顔良과 文丑, 다섯 관문에서 죽인 여섯 장수 등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는 누구에게 가서 찾아야 하는 겁니까?” 이후 종종 현신, 사람들은 廟를 세워 제사. 뒷사람이 거기 시를 지었다.

  赤面秉赤心

  騎赤兎追風

  馳驅時無忘赤帝

  靑燈觀靑史

  仗靑龍偃月

  隱微處不愧靑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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