鬼說

포송령과 鬼狐史

검하객 2012. 12. 7. 06:38

 

 

 포송령은 淄川 사람. 齊나라 문화의 발상지인 臨淄에서 수십 리 지점. 치천현 동남쪽의 黉山은 한 대 鄭康成이 서원을 열었던 곳. 黉山 뒤의 梓洞은 鬼谷子가 강학했던 곳. 귀곡자의 제자 중에 소진과 장의가 있었다. 남쪽의 夾谷臺는 공자가 노나라 司寇로 있을 때 定公을 모시고 제나라 왕과 만났던 곳.

 

 

  25세 무렵부터 “요재지이”를 짓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친구 張篤慶의 시에 이런 구절들이 보인다. “自是神仙人不識”,“司空博物本風流” 司空博物은 司空 張華의 “博物志”. “聊齋且莫竞淡空” 30세에 남쪽을 여행하다가 시 한 구절을 지었다. “新聞總入鬼狐史,斗酒難消块磊愁.” 王士禎(1634~1711)은 “요재지이”를 빌려 보고는 36조의 평어를 남겼다. 그리고 「戱題蒲生聊齋志異卷後」를 지었다. “姑妄言之姑聽之,豆棚瓜架雨如絲。料應厭作人間語,愛聽秋墳鬼唱時.” 李賀의 시 “秋墳鬼唱鲍家詩”를 끌어 쓴 것이다. 포송령은 왕사정의 제자로 자처하며 그의 서문을 원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馬瑞芳이란 사람이 2006년에 연재했던 "《聊斋志异》如何写成?(1)"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鬼狐史, 얼마나 매력적이고 도발적인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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