鬼說

슬픈 여우의 표정

검하객 2015. 3. 17. 15:24

 

   덩치가 크지도 않고, 인상이 사납지도 않으며, 사람을 해치지도 않았다. 꼬리가 아홉인 종자도 없고,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여인으로 변해 남정네를 홀리다니. 범이나 늑대처럼 크고 세어 소를 잡아먹은것도 아니다. 그저 닭이나 욕심냈을 뿐.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우에게 온갖 나쁜 수식어를 붙였다. 먼 고대에 여우는 상서로운 동물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매우 요망한 짐승으로 혐시되었다. 간추리면 妖女와 奸臣. 이러한 변화는 아마도 국가가 확립되고 동시에 남성 중심 윤리가 만들어지면서부터일 것이다. 이는 역으로 군주와 남성 중심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여우 이야기를 빼면, 민간 또는 이념 밖에서 인식된 여우의 형상이 나타날 것이다.

  "산해경"에서는 구미호를 靑丘, 즉 요동과 한반도 산에 사는 동물로 기술하였다.

 

   청구의 산에 짐승이 있는데, 모습은 여우 같으나 꼬리가 아홉이며, 우는 소리가 아이 울음 같으며 사람을 잡아먹는다. 이를 먹으면 홀리지 않는다. [青丘之山] 有獸焉, 其狀如狐而九尾, 其音如嬰兒, 能食人, 食者不蠱.” 郭璞은 여기에 九尾狐.”라고 주를 달았다. (山海经, 南山经)

청구국은 그 북쪽에 있는데, 이곳의 여우는 다리가 넷에 꼬리가 아홉이다. 青丘國在其北, 其狐四足九尾. ( 山海經, 海外東經)

 

우임금은 30살이 되어 도산의 구미호와 혼인하였는데, 아홉 털은 제왕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禹三十未娶, 恐時之暮, 失其制度, 乃辭雲吾娶也, 必有應矣.’ 乃有九尾白狐, 造於禹. 禹曰, ‘白者吾之服也, 其九尾者, 王者之證也. 塗山之歌曰, 綏綏白狐, 九尾龍龍. 我家嘉夷, 來賓爲王. 成家成室, 我造彼昌. 天人之際, 於茲則行. 明矣哉!’ 禹因娶塗山, 謂之女嬌. (趙曄, 吳越春秋, 越王無余外傳)

 

 "설문해자"에서는 여우를 귀신이 타는 짐승으로 소개했는데, 가치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신비롭게 보았던 듯하다.

 

狐祆獸也, 鬼所乘之. (說文解字)

 

당나라 때 나온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구설(舊說)에 들여우를 자호(紫狐)라 했는데 한밤중에 꼬리를 쳐서 불을 일으킨다.” 했고, “자호는 반드시 해골을 머리에 이고 북두성을 향해 절을 하는데, 해골이 떨어지지 않으면 화하여 사람이 된다.”고도 하였다. 역시 당나라 때 나온 朝野僉載』에는 당나라 초기부터 백성들 사이에서 여우 신앙이 널리 퍼져 마을마다 여우신이 있었다 ("唐初以來, 百姓多事狐神, 當時有諺曰, 無狐魅, 不成村.”)고 했다.

 

 여우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수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우리 주변에 살던 이 귀여운 여우가 한반도에선 거의 멸종되었다. 여우가 사라지면 여우 이야기가 남을 턱이 없다. 종종 아파트 베란다에서 고라니를 보고 산책중 달아나는 너구를 만나는 즐거움처럼, 산행중에 다북한 털을 말아 올린 여우를 구경하는 즐거움을 맛보면 좋겠다. 여우가 없는 숲이 무어 신령스러운가! 앞으로 지어지는 여우 이야기는, 숲으로 여우를 부르는 주술이어야 한다.

 

 狐魅, 狐仙, 狐女, 狐狸, 狐鬼, 鬼狐, 狐身, 狐精, 狐妖, 狐幻, 狐尾, 狐媚, 狐肝, 狐窟, 老狐, 野狐, 白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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