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네 가즈아키(小峯和明)가 짓고 이시준이 옮긴 "일본 설화문학의 세계" 수록 두 편 글을 건성건성 읽었다. 뒤에 실린 '지은이의 말'이 인상적이다.
"설화 연구는 근년에 들어 특히 활발해졌는데, 학문으로 인식됨으로써 잃어버린 것도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연구자가 학문의 옷을 걸치고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어, 반대로 설화를 재미 없는 시시한 것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은 그러한 연구 풍토에 대한 작은 반박의 의미로도 집필되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지만, 어떤 경우든 연구는 두 가지로 나뉜다. 살려내는 연구와 죽이고 마는 연구. 설화는 살아 움직여야 의미 있느니, 연구는 잠자는 설화에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일본에는 헤이안 시대에 편찬된 많은 설화집이 남아있다. 사라진 우리 이야기들이 안타깝다면, 어떻게 1000년 뒤의 후손들에게 풍부한 이야기를 남겨줄 것인가를 생각하면 된다.
맨 앞에 실린 <천축에서 건너온 덴구(天狗) - 대두 승정>은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설화 연구의 방향과 의의를 집약한 논문이다. "今昔物語集"에 실려 있다. 불법을 방해하려고 천축에서부터 날아오지만, 결국 불법에 감화되어 자취를 감추었다가 환생하여 묘구(名救)라는 승정이 된다. 묘구의 정체는 "헤이케이야기 平家物語"에 실린 고레타카와 고레히토의 황위쟁탈담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묘구는 大豆 승정으로 불렸는데, 대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콩이 지닌 주술 또는 벽사 민속을 검토해야 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던진 파문, 그리고 여러 사연들의 퇴적, 이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설화의 숲에 들어가는 일이다.
<여도적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 - 헤이안경(平安京)의 어둠> 은 생기가 살아있는 논문이다. 또한 "今昔物語集"에 실려 있다. 어떤 남자가 길을 걷다가 큰 집에서 여인이 낸 쥐울음 소리를 듣고 들어가 그녀와 결연한다. 그녀난 여러 사람들을 부렸는데, 그 사이에는 도무지 아무런 말이 없다. 2년 함께 사는 동안 여러 차례의 집단 도적 행위에 가담한다. 여인이 이별을 암시한 뒤 사라지고, 집도 흔적이 없어진다. 남자는 몸에 익은 도적질을 하다가 체포되어 檢非違使廳에서 고문을 받다가 자기가 겪은 일들을 자백한다. 이것 말고도 그 시대에는 여도적 이야기들이 전승되었다. 저자가 이 이야기에서 주목한 것은, 당시 헤이안경이 품고 있던 깊이, 어둠, 미지의 세계이다. 4차원의 세계로 가는 싱크홀, 환상의 세계로 가는 철로. 그리고 그에 대한 의아와 경이의 생동! 수많은 이야기들이 태어나는 산부인과 병동으로 경찰서 또는 검찰청을 지목한 것도 흥미롭다. 범죄야말로 실존의 현장이며, 온갖 정당성과 부당성이 투쟁하는 장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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