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은 김수영보다 18년 먼저 태어났고 18년 먼저 죽었다. 오웰은 식민지 버마에서 제국의 경찰 노릇을 했고, 노숙자 생활을 했으며,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다가 48살의 나이로 죽었다. 김수영은 서울에서 태어나 만주에 갔다가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으며 또한 48세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두 사람에게서는 왠지 묘한 동질감이 묻어난다. 사진으로 나타나는 외모도 그렇거니와 글도 그렇다.
네루다 평전을 읽다가 오웰의 책 몇 권을 주문했고, 그중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의 몇 편을 읽었다. 런던 노숙자들의 생활을 다룬 <스파이크>, 식민지 죄수 사형 집행 뒤의 공허감과 분열감을 생생하게 살려낸 <교수형>, 그리고 제국 관리의 비주체성을 그린 <코끼리를 쏘다>, 서점에서 일하며 책에 대한 흥미를 잃은 체험을 담은 <서점의 추억>을 차례대로 읽었다.
그리고 1936년 내전 당시 스페인의 내부 사정을 고발한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까지. 마지막 글은 이해가 어려워 두 번 거듭 읽었다. 1936년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에서 로버트 조던이 집시 게릴라 부대에 참여하여 사흘간 마리아와 사랑하고 죽어간 그 해이다. 헤밍웨이는 낭만적인 사람인지라, 그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피워냈다. 하지만 오웰의 글에는 비판과 절망만이 있을 뿐이다. 오웰이 보기에 당시 스페인의 집권 좌익 공화파는 오직 내부의 혁명(적)만을 두려워하여 현상유지에만 급급하여 공포정치를 자행하는 집단에 지나지 않았고, 이러한 스페인의 현실을 은폐하는 것은 좌파 언론들이었다. (권력은 언제나 내부의 적만을 두려워하며 현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내부의 적만이 목에 칼을 들이대고, 현재 권력이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1950년 오웰은 죽고 나서, 그의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한국의 김수영에게 스며든 것이 아닐까? 일단 직감만 적어두고, 언젠가 두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정확한 경위를 물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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