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식열전 읽기를 일단락 지었다. 약 3주간 화식을 그리는 사마천의 마음에 빠져 지냈다. 박제가의 가난과 지향이 떠올랐다. 화식열전 마무리 기념으로 예전에 번역했던 초정의 글을 올린다. 사마천의 마음이여, 박제가의 슬픔이여!
강원도 인제현 기린산골로 떠나는 백영숙을 보내며 送白永叔基麟峽序
세상에서 가장 좋은 벗을 말할 때는 가난한 날의 우정을 꼽습니다. 친구와 사귀는 도리를 가장 아름답게 드러낸 말은 가난한 사정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라 말들 합니다. 아! 높은 벼슬의 사람이 간혹 자신을 낮춰 수레를 타고 가난한 사람의 집을 찾기도 하고 포의의 선비가 권력가의 집을 들락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왜 정성을 다해 벗을 찾아다니는데도 마음에 맞는 친구를 얻기가 어려운 걸까요?
이른바 벗이란 술잔을 들고 은근한 정을 나누면서 손을 맞잡고 무릎을 가까이 맞대는 사이만이 아닙니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있고 말하지 않으려 하다가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데, 이 두 가지에서 사귐의 깊고 얕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끼는 마음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욕심을 내는 것은 재물이고, 또한 남에게 부탁해야 될 때가 있는데 돈 얘기보다 꺼내기 어려운 게 없다. 재물과 돈 빌리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꺼림이 없는 벗이라면 다른 것에 대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시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렵고 가난하건만 내 고생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네.” 내가 고생하며 살아도 남들은 터럭 하나 까딱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은혜와 원망이 여기에서 생겨납니다. 저 가난한 사정을 감추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어찌 남에게 부탁할 일이 하나도 없기야 할까요? 그는 집 밖을 나가면 억지로 웃으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어찌 능히 오늘의 끼니가 죽인지 밥인지를 모두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평상시 일어난 일들을 이것저것 꺼내지만 당장 절박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니, 눈치를 봐야 하는 사이에 정말 꺼내기 어려운 말이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어렵사리 운을 떼고 말을 몰아가서 막상 돈 얘기를 꺼냈는데 상대방의 눈썹 사이에 막연히 싫은 내색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했던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경우이니 지금 비록 말을 꺼내긴 했으나 실제로는 말하지 않은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많은 사람은 남의 돈 꿔달라는 부탁이 걱정되어 선수를 쳐서 돈이 없다고 하여 상대방의 기대를 미리 끊어버리니, 말도 꺼내지 못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이른바 술잔을 들고 은근한 정을 나누면서 손을 맞잡고 무릎을 가까이 마주하던 사람도 대개는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실의에 젖어 무거운 발걸음을 돌이키게 됩니다. 나는 이와 같은 일을 통해 가난한 사정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벗을 쉽게 얻을 수 없으며, 첫머리에 했던 말이 격동되어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날에 사귄 벗이 가장 좋은 벗이라고 합니다. 자질구레하고 시시콜콜한 관계라서 그런 것인가요? 요행으로 얻은 관계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요? 처한 사정이 같다보니 직업이나 지위를 따져볼 필요가 없고, 걱정거리가 같다보니 어렵고 힘든 상황을 잘 알기에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손을 꽉 잡고 괴로움을 위로해줄 땐 반드시 밥을 잘 챙겨 먹는지, 추위에 고생하지는 않은지를 먼저 묻고 나서 가족들의 사정을 묻습니다. 그러면 말하지 않으려 했어도 저절로 말하게 되니 친구의 처지를 진심으로 슬퍼해주는 마음에 감격하여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엔 그토록 남에게 꺼내기 힘들었던 사정도 지금은 줄줄줄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와 말문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친구 집 문을 휙 열고 들어가 안부를 묻고 나서 하루 종일 한마디도 없이 베개를 끌어다가 한잠 푹 자고 가버려도 오히려 다른 사람과 십 년간 사귀며 나눈 대화보다 나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사귐에 마음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말을 나누어도 말하지 않은 것과 똑같습니다. 벗을 사귐에 벽이 없다면 비록 서로 묵묵히 말을 잊고 있어도 괜찮은 것입니다. 옛말에 ‘흰머리가 되도록 오래 사귀었어도 처음 본 듯 서먹서먹하기도 하고, 수레를 멈추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도 오랜 친구 같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의 벗 백영숙은 재기를 자부하며 세상에 노닌지 삼십년이 되었으나 끝내 곤궁하여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제 자기 어버이를 모시고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려 합니다. 아아! 그와는 곤궁한 시절에 사귀어서 서로 가난한 사정을 터놓고 말했으니 나는 몹시 이것을 슬퍼합니다. 비록 그렇긴 하나 나와 영숙의 사귐이 어찌 단순히 가난할 때의 사귐에 그치겠습니까? 영숙의 집에는 이틀을 이어 밥 짓는 연기가 난 적이 없었지만 서로 만나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술을 바꾸어 마셨습니다. 술기운이 거나해지면 소릴 지르며 노래 부르고 세상을 업신여기고 꾸짖으며 실없이 웃었으니 천지간의 애환과 세상인심의 변덕스러움, 세상살이의 단맛 신맛이 그 속에 담겨 있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아, 슬픕니다. 영숙이 가난한 시절의 벗이었을 뿐이라면 어찌 그토록 자주 나와 함께 어울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을까요? 영숙은 일찍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 사귐을 맺은 사람들이 나라 안에 두루 퍼져 있었습니다. 위로는 정승과 판서 목사와 관찰사에서 그 다음으로 현달한 이들과 이름난 선비들이 또한 종종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 밖에 친척과 마을 사람들, 혼인의 의를 맺은 사람들이 또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말 달리고 활 쏘며 칼을 휘두르고 주먹을 뽐내는 부류와 서화와 인장(印章), 바둑 장기, 거문고와 의술, 지리, 방술을 쓰는 무리로부터 저잣거리의 교두꾼과 농부, 어부, 백정, 장사치 등의 천한 사내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길에서 만나 도타운 정을 나누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또 집으로 연신 찾아오는 사람도 접대하였습니다. 영숙은 또 능히 그 사람에 따라 얼굴빛을 적절하게 하여 각기 그 환심을 얻었습니다. 또 산천과 풍속, 이름난 물건, 옛 자취 및 관리의 다스림과 백성들의 고충, 군정과 수리(水利)를 잘 말하였는데, 모두 그의 뛰어난 바였습니다. 이것으로 여러 수많은 사귀는 사람과 노닐었으니, 또한 어찌 서로 뜻을 얻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질탕하게 노닐만한 사람이 하나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때로 내 집 문을 두드리는데, 물어보면 달리 갈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영숙은 나보다 일곱 살 위인데, 나와 더불어 한마을에 살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아직 동자였는데 이제는 이미 수염이 나 있습니다. 십년을 손꼽아 보는 사이에 모습의 성쇠가 이와 같건만 우리 두 사람에게는 오히려 하루와 같으니 그 사귐을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아아! 영숙은 평생 의기를 중하게 여겼습니다. 일찍이 손수 천금을 흩어 남을 도운 것이 여러 번이었으나 마침내 곤궁하여 세상에 쓰이지 못했으니, 사방 어디에서도 입에 풀칠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활을 잘 쏘아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그 뜻이 또 자잘하게 세태를 따라 부침을 하며 공명을 취하기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이제 또 집안 식구들을 이끌고서 강원도 인제 땅 기린 산골짝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내 듣기에 기린 산골은 옛날 예맥의 땅으로 험준하기가 동쪽 바다 가에서 으뜸이라고 합니다. 그 땅 수백 리가 모두 큰 고개와 깊은 골짝으로 나뭇가지를 더위잡고서야 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백성은 화전을 일구고 판자로 집을 지으니 사대부는 살지 않는다 합니다. 소식은 1년에 겨우 한차례나 서울에 이를 것입니다. 낮에 나가면 오직 손가락 끝이 무지러진 나무꾼과 쑥대머리를 한 광부만이 서로 더불어 화로에 빙 둘러앉아 있을 뿐입니다. 밤이면 솔바람 소리가 쏴아 하며 일어나 집 둘레를 흔들고 지나가고 갈 곳 없는 산새들과 슬픈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만이 메아리 칠 것입니다. 옷깃을 떨치며 일어나 방황하며 사방을 둘러보면 눈물이 흘러 옷깃을 적시면서 구슬피 서울 모습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아! 영숙은 또 기린 산골에서 무엇을 할까요. 한해가 저물어 싸라기눈이 흩뿌리면 산이 깊어 여우와 토끼는 살져 있으리니, 말을 달리며 활을 당겨 한 발에 그것들을 잡고 안장에 걸터앉아 웃는다면, 또한 아웅다웅하던 뜻이 통쾌히 풀리고 적막하고 궁핍하던 처지를 잊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또 어찌 반드시 거취의 갈림길에 연연해하며 이별의 즈음을 근심하겠습니까? 또 어찌 반드시 서울 안에서 먹다 남긴 밥을 찾아다니다 다른 사람의 싸늘한 눈초리나 만나고, 남과 말 못할 처지에 있으면서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모습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영숙이여! 떠나십시오. 나는 지난날 곤궁 속에서 벗의 도리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나와 영숙 두 사람이 어찌 다만 가난한 날의 사귐일 뿐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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