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擇細流

마의태자

검하객 2013. 11. 19. 19:52

삼국유사 김부대왕 편에는 신라의 항복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태자가 반대하다가 경주를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삼국사기에는 보이지 않는 장면이다. 이 한 장면에서 훗날 수많은 마의태자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태자가 말했다. “나라의 존망은 천명에 달린 것입니다. 충신 의사와 함께 민심을 거둬 모아 힘껏 노력해야지 1천 년의 사직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에게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왕이 말했다. “고립되고 위태롭기가 이와 같고, 세력을 회복할 수도 없으니, 강해질 수도 더 이상 약해질 수도 없구나. 죄 없는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참을 수가 없도다.” 시랑 김봉휴에게 국서를 들려 태조에게 항복할 것을 청하였다. 태자는 목 놓아 울며 왕을 하직하고 개골산으로 들어가 칡베 옷을 입고 나물을 뜯어 먹다가 죽었다. 막내아들은 머리를 깎고 화엄을 좇아 승려가 되어 이름을 梵空이라 했고, 뒤에 법수해인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王太子曰, 國之存亡, 必有天命, 當與忠臣義士收合(民)心, 力盡而後已, 豈可以一千年之社稷, 輕以與人. 王曰, 孤危若此, 勢不能全, 旣不能强, 又不能弱. 至使無辜之民, 肝腦塗地, 吾所不忍也. 乃使侍郎金封休齎書, 請降於太祖. 太子哭泣辭王, 徑往皆骨山, 麻衣草食, 以終其身. 季子祝髮, 隸華嚴, 爲浮圖, 名梵空, 後住法水海印寺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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