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 잔 술을 청하다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저자에게)

검하객 2014. 5. 3. 09:46

 

  지기를 마주하면 천 잔 술도 모자르고, 말 아니 통한다면 한마디도 피곤하다.

    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

 

  얼굴 보며 말 나누어도 마음은 천산 너머

    對面共語, 心隔千山

 

  오랜만에 책을 주문했고, 또 실로 한참만에 한 자리에서 그 책을 다 읽었다. (물론 듬성듬성) 김상태,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책보세, 2012) 다 읽고 든 생각은, '한 잔 술을 나눌 만한 사람이로군!' 그럴 기회가 있을까? 김상태는 일면식도 없는 윤내현을 이 시대의 스승으로 우러르고, 만나본 적 없는 노태돈, 이기동, 서영수, 이형구, 송호정, 오강원 등 내노라 하는 역사학자들을 무능하고 위선적인 인간말종으로, 협잡과 야합으로 진실을 살해하는 테러리스트로 몰아부쳤다. 나는 김상태 식의 이런 욕설을 좋아하지만, 남 눈치를 보는 데다 대학물을 먹는지라 태도와 표현은 늘 중립성을 유지한다. 비겁하고 가식적이다. 일부 과격한 언사들을 조금 걸러낸다 해도, 이 책의 내용은 매우 쉬우면서도 논리적이고 비판적이어서, 고조선을 둘러싼 한국 고대사 연구의 흐름과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왜 浿水에 관한 소문은 무성하고 담론도 풍요로운데, 정작 논문이 검색되지 않고 상식적인 논쟁이 사라졌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이 책의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술 한 잔을 청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의 두 구절.

 

  신채호와 리지린과 윤내현이 사라진 영웅이 되어야 했던 궁극적인 이유는 제 나라의 역사를 사랑하고 제 나라 역사의 진실을 추구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진리의 명부에서 지우려고 했던 주체들은 일본 군국주의와 분단의 공포였다. 지난 100년간 한반도는이 두 마리 저승사자의 유린으로 갈갈이 찢기었다. 물론 나는 이 시련의 역사가 부끄럽지도 좌절스럽지도 않다. 나뿐 아니라 오늘 하루의 생존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도 같은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절체절명의 시련을 딛고 끝내 살아남은 자들이 바로 국민이기 때문이다. 수난 받는 자들에겐 죄가 없다. 그리고 그 죄 없는 자들이 이 한반도를 푸른 숲처럼 생생히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무슨 부끄러움과 좌절이 있겠는가. (529)

 

  끝으로 역사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역사를 전공한다는 당신들에게 한가지 충고하겠다.

  역사란 본래 암흑 속에서 침묵하는 실체다. 이 역사가 빛과 음률로 드러나는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역사가 자신을 서술하는 역사학자의 영혼을 만났을 때다. 어떤 역사도 자신을 서술하는 역사학자의 영혼을 먹고 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다. 중국 고대사는 사마천의 영혼을 먹고 세상에 드러났으며 고대 지중해사는 헤로도토스의 영혼을 먹고 세상에 출현하였다. 인간의 기억에 흔적을 남긴 어떤 역사도 그러했다. 고조선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신채호와 리지린과 윤내현의 영혼을 먹고 탄생의 첫 울음을 열었다. 이처럼 역사는 역사학자의 영혼을 양식으로만 암흑과 침묵의 장막을 걷어낸다.

  그러나 당신들에겐 이 영혼이란 것이 부재한다. 따라서 당신들은 역사학자들이 아니다. 당신들은 그냥 껍데기다. (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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