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학회 단상

검하객 2014. 4. 21. 02:08

북악산 자락의 학교, 갖가지 물감이 짙게 번지기 시작하는 산색은 황홀했다. 세 발표, 함량 미달 하나, 지리 번쇄 하나, 장황 오만 하나. 이 분야 학문의 현주소, 아니면 우리 지식계의 축소판이 아닐까? 발표를 시작할 때마다 눈이 감겼고, 발표가 끝날 때쯤 눈이 떠졌다. 꿈세계로 떠나가도 화들짝 놀라 돌아오게 하는 그런 발표는 못한다 해도, 멀쩡한 사람을 몽유하게 하지는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별 지적 긴장과 자극이 없는 학회, 어쩌면 좋은가!

 

 불평하지 말자. 짜증내지도 말자. 우리는 권력이 작동하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권력은 윤리의 주인이며 현실의 배후 조종자이다. 나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도 시원하게 인정하게 하자.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 시작하자! 낮은 곳의 편안함을 만끽하자!

 

  다산 자찬묘지명의 한 구절. "六經四書, 以之修己, 一表二書, 以之爲天下國家. 所以備本末也. 然知者旣寡, 嗔者以衆, 若天命不允, 雖一炬以焚之, 可也."  음, 그는 천하국가를 위해 1表와 2書를 저술하였지. 나름 본말을 갖추려 했다. 하지만 그가 느끼기에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고, 화내는 사람은 많았다. 성질 같아서는 한 곳에 모아놓고 불질러버리고도 싶었다. 그의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다산을 안다면 나도 1表 2書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일이 나의 1표2서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