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즈막하게 일어났다. 지난 주말 심하전역 답사가 꽤나 고되었던지 피로가 온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아침은 거른 채 커피 한 잔을 들고 <흐르는 강물처럼>으로 들어갔다. 폴의 죽음, 아버지의 마지막 설교,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제 마음속에만 살아있는, 늙은 노먼 맥클레인의 회상 서술. 스탭 자막이 올라가도록 한동안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감독은 로버트 레드포드. 노먼 맥클레인의 시점. 영화 속의 배경은 1900년에서 1926년 사이이고, 서술 시점은 노먼 맥클레인의 나이로 보아 1980년 즈음이다.
오후에는 지난 겨울에 읽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했다. 1327년 겨울,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60년 쯤 지난 뒤 그 현장에 있었던 수도사 아드소가 회상하여 풀어내는 이야기다. 기독교 세계 최고의 도서관을 갖춘 베네딕트회 소속 수도원, 탐욕적이고 세속적인 원장, 이성이나 독서 아닌 절대 신앙을 강조하는 우르베티노 수도사, 장서관의 기능은 지식의 추구가 아니라 지식의 보존이라며 장서관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웃음을 죄악시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에 독약을 묻혀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사서들을 죽음으로 내몬 장님 호르헤 수도사,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지식과 이성을 신봉하는 바스커빌 출신의 프란체스코쇠 소속 수도사 윌리엄, 도미니크회 소속이며 교황권의 수호자인 이단심문관 베르나르 기, 그리고 멜크 수도원에서 온 베네딕트회 소속 소년 수련사로 윌리엄을 수행하는 아드소, 가난한 가족들을 위해 수도원을 드나들며 몸을 내놓는 소녀 등.
저녁에 잠깐 운동을 하고, 밤이 깊어 영화 <장미의 이름>을 시청했다. 1986년 장자크 아노 감독의 작품. 소설의 맥락 없이 영화만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그건 도리가 없는 부분. 소녀가 화형을 면하고, 베르나르 기가 달아나다가 분노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 등은 각색 과정에서 추가된 것이다. 잠깐 사랑을 나눈 소녀의 체포와 처형 소식에 마음 아파하는, 성모상 앞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아드소의 표정이 눈물겹다. 소설에서 화형이 암시된 소녀의 운명 때문에 못내 마음이 아팠는데, 영화를 보고 꽤나 위안이 되었다. 불타는 장서관에서 목숨 걸고 몇 권의 책을 들고 나오는 윌리엄, 나귀를 타고 수도원을 떠나다가 소녀와 재회하는 아드소, 그리고 눈 쌓인 길을 나귀를 타고 걷는 윌리엄과 아드소의 원경도 인상적이다. 1327년에 10대 중반의 소년이었던 아드소가 늙은 뒤의 이야기이니 서술 시점은 1380년 정도가 되겠다.
오늘 나는 나비가 되어 두 노인의 이야기 속과 현실을 넘나들었다. 영화 속 인물들의 눈빛과 표정들이 생동한다. 내일은 누구와 이 이야기를 나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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