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코스모스와 쇠자

검하객 2014. 6. 12. 21:08

  며칠 전 연구실에서 온라인 지도를 보며 대략의 거리를 측정하려고 자를 찾았는데 눈에 띄지 않았다. 자가 없었나? 자를 장만해야지. 오늘 마침 생각이 나길래 점심도 먹을 겸 학생회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심코 화단을 지나다가, 고개를 돌려 한참을 보았다. 코스모스가 천연덕스럽게 피어있었다. 양력으로는 6월 12일, 음력으론 이제 5월 15일이다. 아무리 성급하단들 8월은 되어야 필 녀석들이 아닌가. 한참을 보다가 말을 건넸다. "너무 이른 거 아니냐?" 녀석들은 말없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거릴 뿐이었다. 너무 서둘지 말거라, 그렇잖아도 세월의 흐름이 빠르단다. 문구점에 들러 쇠자를 찾았다. 튼튼하고 서늘한 쇠자를 갖고 싶었다. 30mm 짜리 튼실한 쇠자 하나와 12cm 짜리 뿔자 하나를 사 들어왔다. 왠지 마음이 든든했다.  이 녀석만 있으면 웬만한 거리는 잴 수 있으렸다. 앞을 보고 뒤를 살피고, 보검인 양 한참을 쓰다듬었다. 윌리엄 수사의 말에 따르면, 이 자가 곧 진리이다. 문학 연구자가 자를 쓸 일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며칠 전보다 훨씬 마음이 든든하다. 나에겐 용천검 같은 서늘한 쇠자가 하나 있다.

  (다움이 뼈다귀탕이 먹고 싶다길래, 데리고 나갔다. 몇 잔 소주와의 황홀한 입맞춤, 밤길을 녀석과 수다를 떨며 걸어 돌아왔다. 위의 글은 음주 작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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