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은 제작된 사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단순한 사물과는 달리, 다른 어떤 것을 말하고 있다. 작품은 다른 것을 공개하고, 개시(開示)한다. 작품은 알레고리이다. 예술작품 가운데는 제작된 사물적 요소에 다른 어떤 것이 결합되어 있다. 이 결합하는 것을 그리스어로 symballein이라고 한다. 작품은 Symbol이다. 이렇게 해서 우유와 상징이라는, 예술을 근본적으로 테두리짓고 있는 개념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사실 오랫동안 예술작품을 규명하는 작업은, 이러한 개념들의 궤도 안에서 움직여 왔다.
도구의 도구 존재는 용도성 가운데 자신의 본질을 갖는다. 그러나 이 용도성이란 것 자체는 무엇일까? 이 용도성이란 개념으로써, 이미 도구의 도구적 성격은 남김없이 모두 파악된 것일까? (고흐의 〈구두〉) 이 구두라는 도구의 밖으로 드러난 내부의 어두운 틈으로부터 들일을 하러 나선 이의 고통이 응시하고 있으며, 구두라는 도구의 실팍한 무게 가운데는 거친 바람이 부는 넓게 펼쳐진 평탄한 밭고랑을 천천히 걷는 강인함이 쌓여 있고, 구두가죽 위에는 대지의 습기와 풍요함이 깃들여 있다. 구두창 아래는 해 저물녘 들길의 고독이 깃들여 있고, 이 구두라는 도구 가운데서 대지의 소리 없는 부름이, 또 대지의 조용한 선물인 다 익은 곡식의 부름이, 겨울들판의 황량한 휴한지 가운데서 일렁이는 해명할 수 없는 대지의 거절이 동요하고 있다. 이 구두라는 도구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빵의 확보를 위한 불평 없는 근심과 다시 고난을 극복한 뒤의 말 없는 기쁨과 임박한 아기의 출산에 대한 전전긍긍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의 전율이다. 이 구두라는 도구는 대지에 속해 있으며, 촌 아낙네의 세계 가운데서 보존되고 있다. 이 보존된 귀속으로부터 도구 자체의 자기 안식이 생긴다.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오병남 외 옮김, 『예술작품의 근원에 대하여』(경문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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