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자료

마부와 교수(이태준, 1933)

검하객 2014. 11. 13. 15:51

 

 

마부와 교수 (이태준, 1933)

 

하필 그 여학교 문 앞에서였다. 자갈을 실은 두 마차가 그 경사진 길을 올라가다, 앞엣 말이 쿵하고 나가동그라진 것은.

마부야 으레 하는 순서로 땀 배인 등허리에서 그 말 가죽에 알른알른 닳은 물푸레 채찍을 뽑아드는 수밖에 없었다. “이놈의 말이 그만 죽고 싶은가 …….” 암만 죄기어도 넘어진 동물은 입에 거품만 뿜을 뿐, 일어서기는커녕 가로 박힌 눈알이 주인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나중에는 멍에를 부려 놓고도 족치어 보나 매가 떨어질 때마다 네 굽만 움죽움죽하여 보일 뿐, 그 이상 매도 타지 않는다.

마부는 화가 밀집벙거지에까지 올려 뻗친 듯 그것을 벗어내 팽개치더니, 길 아래 남의 밭에 가서 울짱을 하나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그래서 다른 마부는 고삐를 나꿔채이기, 이 마부는 저도 거의 거품을 물다시피 악을 써 매를 때리기 한참인 때였다. 벌써 하학들을 하고 돌아가는 것인지 제보의 처녀 한 떼가 우르르 쇠문 안에서 쏟아진다.

저런! 망측해 …….” “아규머니나, 불쌍해 …….” “저런!” “저런!”

선량한 그들의 가슴은 돌발적으로 의분에 떨리었다.

저런 망할 녀석! 힘에 부쳐 넘어진 걸 왜 자꾸 때리기만 할까 …….” “저런 무도한 녀석 같으니!” “선생님 저것 좀 말리서요.” “선생님, 가만 두라고 좀 그리서요.”

마침 교수 한 분이 나오다가 길도 막혔거니와, 이내 어여쁘고 선량한 제자들에게 둘러싸였다. 교수는 성큼 매질하는 마부 앞으로 나섰다. “여보?” 마부는 소매로 이마를 씻으며 긴치 않게 쳐다본다. “왜 그다지 때리오.” 교수는 말의 주인보다 더 가까운 말의 친구이나처럼 꽤 높은 소리로 탄했다. 학생들은 손뼉이라도 칠 뻔 속이 시원하였다.

그러나 마부는 댁이 웬 걱정이냐?’ 싶은 듯이 대꾸도 없이 다시 매를 드는 데는 교수도 말을 말리기보다, 제자들 앞에서 잃어지는 체면을 도로 찾기 위해서도 그냥 있을 수가 없는 듯, 다시 한걸음 나서며 마부를 나무란다.

글세 여보? 아무리 동물이기로 당신 이익을 위해 저렇게 힘의 착취를 당하고 쓰러진 걸 왜 불쌍히 여길 줄 모르오? 한참 그냥 두어 좀 쉬게 하면 큰일 나오?”

교수의 말투로 보면 자본주격인 마부는 이번에는 대꾸를 하되, “이를테면 댁이 나보다도 더 이 말을 중히 여겨 하는 말이오?” 하고 을러댄다. 교수도 화가 날밖에.

그렇소. 동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당신보다 더하오.”

학생들은 또 손뼉이라도 칠 뻔, 속이 시원하였다.

모르면 모르나 보다 하고 어서 가슈, …….”

이것이 대담하게도 마부의 대답인 데는 둘러섰던 다른 사람들도 마부를 괘씸히 던져 보는 한편, 쇼구의 톡톡한 닦달이 어서 내리기를 기다렸다. 교수는 얼굴에 투지발발(鬪志勃勃)하여, “고약한 사람이로군 ……하고 안경 쓴 눈을 으르댄다.

그러나 마부는 의외에 교수의 노염을 타려 하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를 낮추어 어린애에게 타이르듯, “말이란 것은 쓰러졌을 때 이내 일으켜 세우지 못하면 죽고 마는 짐승이오. 그래서 병이 들어 약을 먹이고도 눕지 못하게 허리를 떠 북고개에 매달아 놓는 것이오, 허허 …….” 하고 다시 말을 족치기 시작한다.

교수는 그만 땀은 흐르되 입은 얼고 말았다. 모여섰던 사람들도 모두 저 갈 데로 갔다. 흥분하였던 여학생들도 모두 무슨 운동 시합에서 저희 선수가 지는 것을 보고 돌아서듯 하나씩 둘씩 말없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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