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병실몽유

검하객 2015. 2. 24. 12:36

적과 흑 (Le Rouge et le Noir, 1830)

이규식 옮김, 문학동네, 2013

진실, 쓰디쓴 진실 (당통)

 

"그는 이런 반감을 루소의 고백록에서 끌어왔다. 그 책은 쥘리앵의 상상력이 세계를 그려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책이었다.""(1부 5장)

이는 곧 스탕달이 루소에게서 받은 영향의 고백이다.

 

"마침내 그는 큰 산 정상에 당도했다. 작은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나를 해치지 못할 거야. 나는 자유로워!" (1부 12장 여행)

3년 뒤 쥘리앵은 이 동굴에 묻힌다. 그리고 혼자 자유로워진다.

 

볼테르 이래로, 그리고 요컨대 불신과 개인적 성찰에 지나지 않으며 민중의 정신에 의심의 악습을 부여한 양원 제도가 성립된 이후로 프랑스 교회는 교회의 진정한 적이 서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교회가 보기에 마음으로부터의 복종이 전부이다. 연구에서의 성공은 그것이 종교에 관한 것이라 해도 당연히 수상쩍은 것이다. 흔들리는 교회는 유일한 구원의 기회인 양 교황에게 매달린다. 오직 교황만이 개인적 성찰을 마비시키려 애쓰고 교황청의 호화로운 종교예식으로 세상 사람들의 지치고 병든 정신에 감명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신학교에서 하는 얘기에서는 모두 부인되는 이런 다양한 진실을 어중간하게나마 간파한 쥘리앵은 깊은 우울에 빠졌다. …" (1부 26장)

종교의 허위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성당의 전례 책임자 샤 베르나르 사제. 성당의 종소리, 그 장중한 종소리가 50상팀을 받는 일꾼 스무 명이 열댓 명 정도의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행하는 노동이라는 생각을 쥘리앵에게 일깨워줘야 했을 것이다. 그는 종루의 밧줄이나 목재가 마멸되어가는 것이라든지 두 세기마다 떨어져내리는 종의 위험 같은 것을 생각해야 했을 것이고, 종지기들의 임금을 깎아내리는 수단이나 성당 재정을 축내지 않고 선심 쓰듯 어떤 물건을 대신 줌으로써 임금을 가로채는 수단 등을 성찰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쥘리앵의 영혼은 그런 현명한 성찰을 하는 대신에 그처럼 힘차고도 우렁찬 종소리에 고양되어 상상의 세계를 떠돌고 있었다. " (1부 28장)

쥘리앵의 야망은 착륙할 곳을 만들지 못했다.

 

저는 태어나면서 아버지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저의 가장 큰 불행 중 하나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제 운명을 탓하지는 않을 겁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한테서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2부 1장, 피라르 사제에게)

쥘리앵의 불행, 운명으 주인임을 선언,이 초인적 의지가 비참한 종말을 가져온다.

 

그곳에서는 조금이라도 사상이 과격하면 상스럽게 보였다. 공손한 말투와 흠잡을 데 없는 예절과 유쾌해지려는 욕구에도 불구하고 권태가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났다.”(2부 4장)

일체의 역동성과 생동감이 사라진 귀족의 권태로운 삶. 화려함과 권태의 기묘한 어우러짐.

 

이 무도회에 참석한 사람 중에서도 살인자로 천벌을 받을 인간을 열 명쯤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걸 잊어버리고 세상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기르는 개가 다리만 부러져도 흥분해서 눈물을 흘릴 겁니다.” (2부 9장)

사형선고를 받고 망명해온 자유주의자 알타미라 백작의 말, 여전히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주물럭거린다.

 

"만일 정말 기독교들의 신을 만나면 나는 끝이다. 그 신은 폭군이고, 그런 존재가 대개 그렇듯이 복수심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그의 성서도 끔찍한 징벌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나는 그 신을 사랑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그 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 신은 무자비하다. 그 신은 내게 끔찍한 방법으로 벌을 줄 거야. 하지만 만일 내가 페늘롱의 신을 만난다면! 그 신은 아마도 내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너는 많이 사랑했으니 많이 용서받으리라. ” (2부 42장.

스탕달은 한 세대 뒤에 나오는 위고와 도스토예프스키와, 그리고 두 세대 뒤의 니체, 그리고 100년 뒤의 카잔차키스의 선배가 되기에 족하다.

 

자연법이라는 건 없다. 그 말은 요전날 나를 몰아세운 차장검사에게나 어울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어리석은 말일 뿐이지. 그 인간의 조상도 루이 14세의 몰수재산 덕분에 부자가 되었을 거야. 그런 짓을 할 경우 벌을 주어 막는 법이 있을 때에야 법이라는 것도 존재하는 것이다. 법이 존재하기 전에는 사자의 힘이나 춥고 배고픈 존재와 욕망, 요컨대 욕망만이 자연스럽다. 그렇다 존경받는 사람들이란 다행히도 현행범으로 붙잡히지 않은 사기꾼들 뿐이다. 사회가 내 뒤를 쫓으러 보낸 고발자도 수치스러운 짓으로 부자가 되었을 뿐이다. 나는 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사형이다. 하지만 그 행위만 제외하면 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발르노 같은 인간은 나보다 백배는 더 사회에 유해한 인간이다. 인색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버지는 그런 모든 인간들보다 낫다.“ (2부 44장.

이는 카프카의 <법 앞에서>의 초고라 할 만하다.

 

하루는 쥘리앵이 푸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죽은 뒤에도 감각을 계속 지니고 있을지도 몰라. 나는 베리에르를 굽어보는 높은 산의 작은 동굴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어. 지금으로서는 휴식이라는 말이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 내 자네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지. 밤에 그 동굴 속에 은거하여 프랑스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방을 멀리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 야망이 불타오른다고 말이야. 그때는 야망이 내 정열이었거든. 어쨌든 그 동굴은 내게 아주 소중한 곳이지. 그리고 그 동굴의 위치는 철학자에게도 오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말이야! 아름답다는 것을 사람들은 부인하지 못할 걸세. 그런데 그 잘난 브장송 수도회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돈을 그러몽려고 하지. 혹 자네가 요령을 알면 그들은 자네에게 내 시신을 팔지도 몰라. (2부 45장.

사형을 앞에 둔 쥘리앵의 말이다. 슬프다! 푸케, 이 소설에서 가장 탐나는 인물이다. 난 푸케와 어울려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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