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열 개의 멍에를 짊어진 비루먹은 馬의 노래, 김용범

검하객 2015. 5. 20. 00:22

 오늘 마주한 시간은 고작 1시간 30분, 점심을 먹고 블랙 커피 한 잔씩을 마셨으며, 생사를 오간 지난 한해 동안 120편의 시를 쓴 이야기, 몽골 대통령의 초청을 받은 고대사연구자들과 함께 고비사막에 가서 별을 보지 못하느 아쉬움, <오페라 주몽> 창작에 대한 이야기, 926년 정월 요나라에 항보한 뒤 끌려가 황제와 황후의 말 이름인 오로고와 아리지란 이름으로 살아간 발해의 마지막 왕과 후 이야기, 925년 12월 요군과 발해군이 격돌했던 扶餘城으로 추정되는 長春市 農安縣 완포인트 답사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고 헤어졌다. 소리는 낮아지고 눈빛에서 날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비굴하거나 불안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삶의 모든 장면들을 소품 풍경화로 떠내는 시인이다. 새로 나온 시집의 제목은 "열 개의 멍에를 짊어진 비루먹은 馬의 노래"이다.

 

  <7월 15일, 레떼 망각의 강을 건너며>에는 단테의 "신곡" 일부를 프롤로그로 놓았다.

 

  늙은 뱃사공 카론이 배를 저어왔다.

 

  슬픔의 나라로 가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 가거라.

  영원의 가책을 받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 가거라.

  파멸한 사람에 끼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 가거라.

 

       ---------

  나를 거쳐가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여기서는 모든 의심을 버려야 하며

  망설임도 모두 없애는 것이 좋다.

 

  나는 은전 한 잎과

  마른 빵 2개로

  늙은 뱃사공 카론을 매수하여

  망각의 강 레떼를 건넜다.

 

  이미 영혼에까지 스며든

  육체에 불순물을 잘라내고

  다시 새로운 육신을 얻어서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아,

  나의 별 명왕성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7월 15일이 수술날이었던가? 그가 모든 희망을 버리며 카론에게 은전을 건넬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문득 가엾고 미안하고 비정하고 무력한 느낌이 몰려온다. 아마 이 시는 수술이 끝나고 꽤 여러 날 지나 지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어인 일로 카론은 그를 저승으로 나르지 않고 다시 이승에 내려 놓았을까? 뒷이야기는 다른 형식이 더 적당할 것이다. 다음은 두산백과에 실려있는 카론 소개이다.

 

    그리스어로 ‘기쁨’이라는 뜻이다.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 닉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여러 개의 강을 건너 저승에 이른다고 믿었다. 즉 ‘비통의 강’ 아케론과 ‘시름의 강’ 코키토스, ‘불의 강’ 플레게톤,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넌 뒤 극락의 벌판 엘리시온을 지나고 ’증오의 강’ 스틱스를 거쳐 하데스의 궁전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카론은 바닥이 없는 쇠가죽 배에 죽은 자들을 태워 아케론강에서 스틱스강까지 건네주었는데, 장례를 치르고 통행료를 내는 사람들만 저승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고대 그리스에서는 죽은 자들을 매장할 때 입에 1오보로스짜리 동전을 물려 주는 관습이 있었다. 예술작품에서는 긴 수염을 늘어뜨린 초라한 모습이지만 고집이 세고 성미가 까다로운 노인으로 묘사된다.

  카론의 임무는 죽은 자들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것이었으나, 산 사람들도 그의 배를 타고 저승으로 가기도 하였다. 헤라클레스에우리스테우스의 명령을 받아 저승의 문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를 잡으러 갔을 때, 카론은 그를 배에 태워 강을 건네주었다가 하데스에 의해 1년 동안 쇠사슬에 묶이는 벌을 받았다.

  또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하여 저승으로 간 오르페우스도 하프 연주로 카론을 감동시켜 저승의 강을 건넜으며, 저승에 가서 ‘아름다움’이 담긴 상자를 가져오라는 비너스의 명을 받은 프시케도 2오보로스의 돈과 굳은 빵 2개로 카론을 매수하여 저승의 강을 건넜다고 한다.

한편, 천체에서 명왕성은 저승의 지배자 하데스의 소행성이라고 하는데, 명왕성위성 가운데 하나에 카론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하였다. 

 

 

카론과 프시케 (1883) , John Roddam Spencer Stanhope (1829–1908) 은전 한잎과 마른 빵 두

조각으로 카론을 매수하고 저승으로 간 사람이 바로 이 프시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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