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학회에서 12월 말 간행될 논문집 준비가 한참인 이맘 때쯤이면 적어도 세 편 이상의 논문 심사 의뢰를 받는다. 보통 모아놓았다가 날 잡아서 집중적으로 읽는다. 연구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것이고, 게재 여부를 평가하는 일이니 꽤나 부담스럽다. 이런 저런 이유를 달고 반려되는 논문을 받았을 때의 낭패감도 익히 알고 있으며, 연구자의 의도나 논문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판을 내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기대를 하고 읽다가 크게 실망하는 경우도 있고, 심드렁하게 읽다가 자세를 고쳐 앉기도 한다.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고, 읽고 나면 안개가 걷히듯 깨달음을 얻는 논문도 있다. 어떤 논문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두세 번 반복해서 읽어도 끝내 요지를 파악하지 못하기도 한다. 지난 주말 세 편의 논문을 읽었다. 한 편은 논리가 부드럽고 논거가 튼실한 데다 내용도 신선하여 거듭 읽으며 음미했다. 이런 논문은 작지만 한 세계를 열어준다. 한 편은 내용 모두가 친숙한데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오독의 염려가 있어 다시 읽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한 편은 불필요한 내용을 너무 많이 담았다. 겉보기는 화려하지만 알맹이가 작으니, 마음 같아선 불필요한 치레들을 모두 걷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은 가장 정확하고 신속하게 특정 지식에 접근하는 철로이니, 지식의 생산과 구축에 있어 그 중요성은 두말이 필요 없다. 그런데 근래 대학에서의 모든 인사 평가가 논문의 편수로만 측정되면서, 점수를 얻기 위해 형식에만 연연하는 논문들이 양산되고 있다. 분량과 편수는 얼마간 줄더라도, 세상의 한 구석을 분명하게 열어보여주는 논문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