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진첩

검하객 2017. 11. 30. 01:08

 

  아주 가끔 먼지를 털고 사진첩을 펼쳐본다. 오래된 흑백사진들이 비밀의 역사를 역사를 속삭인다. 나는 1973년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에서 우체국을 지키던 군인이었고, 1948년 4월에는 제주경찰서의 커피를 좋아하던 형사 정세용이었고, 1823년 정월 마들렌에서 창녀 팡틴을 체포한 자베르였고, 1327년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권에 독을 묻혀놓은 호르헤 수사였다. 1944년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목욕탕이 가스 밸브를 열던 독일군  병사였고, 1980년 5월 광주의 기관총 탄약수였다. 초라한 삶을 구원해준 거룩한 가치들을 모두 손에서 놓고 갸냘픈 바람에도 힘없이 휘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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