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유비와 조자룡의 만남, 삼국연의 7회

검하객 2017. 12. 7. 10:57

 

  모종강 비평본 삼국연의 7회의 제목은 "원소는 반하에서 공손찬과 싸우고, 손견은 장강을 거슬러가 유표를 치다 袁紹盤河戰公孫 孫堅跨江擊劉表"이다. 원소가 공손찬과 韓馥을 속여 冀州를 차지하고, 이에 격분한 공손찬이 군대를 일으켜 磐河(界橋, 하북 邢台市 威縣)에서 격돌하는 내용, 袁述의 부축임으로 劉表를 공격하던 손견이 襄陽 峴山에서 죽는 것이 이 회의 양대 사건이다. 그런데 앉아서 풀과 나무가지 등을 헤치면 여기저기 떨어져있던 밤들이 보이는 것처럼, 표면의 서사 흐름 이면을 예의 주시하면 육안으로 잘 파악되지 않는 더 큰 흐름이 보이기도 한다. 7회에서 그것은, 유비와 조자룡의 만남이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유비는 이 전투에 참여한 적이 없다.  "삼국지, 촉서, 조운전"에  인용된 <조운별전>에 는 조운은 자신이 살던 군()에서 천거되었는데, 관군을 수행하는 의용군을 이끌고 공손찬이 있는 곳으로 갔다. 당시 원소가 기주목이라 칭했었기에 공손찬은 기주 사람들이 원소를 따르는 것을 매우 꺼렸다. 그래서 조운이 자기편에 온 것을 좋아하면서도 ···.”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조운의 반하전투 참여 여부, 공손찬 구조 여부는 역사서에 없으며, 유비와는 만났을 수가 없었다.

 

  公孫瓚亦收軍歸寨. 玄德張動問畢, 瓚曰若非玄德遠來救我, 幾乎狼狽.” 教與趙雲相見, 玄德甚相敬愛, 便有不舍之心. [眼力絕勝公孫瓚. 此爲後文子龍歸劉張本.] --- 次日, 二人至瓚營宣諭, 瓚乃遣使致書於紹, 互相講和. 二人自回京複命. 瓚即日班師, 又表薦劉玄德爲平原相. 玄德與趙雲分別, 執手垂淚, 不忍相離. 雲歎曰某曩日誤認公孫瓚爲英雄, 今觀所爲, 亦袁紹等輩耳!” 玄德曰公且屈身事之, 相見有日.” 灑淚而別. [此時子龍不即歸劉, 非子龍之戀瓚, 乃玄德之愛瓚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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