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시험감독과 시 1, 백석

검하객 2012. 11. 18. 23:13

아침에 급한대로 백석의 시 몇 편을 출력해서 시험 시간에 들어갔다. 역시 최고였다.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눈 내린 숲 깊은 곳으로 흰 당나귀를 타고 하염없이 들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보다 더 좋았던 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 상실, 박탈, 소외, 추방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 방황, 방랑, 유랑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 충만, 풍요, 과잉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 고독의 현시, 실존의 외화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 자괴, 자학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 세상에 가장 무거운 것은 떨군 고개와 가라앉은 마음, 떨군 고개 무게는 천만 근이라 들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 겸허호, 겸손, 내려놓음, 용서, 운명의 자각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 정리, 저장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 여유, 연민의 외면화, 자기대상화, 거리 확보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좋아하는지 알겠다. 설명하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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