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擇細流

책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다 書無常主

검하객 2013. 3. 21. 11:25

 

   책에는 일정한 주인이 없다 書無常主

연암집, 映帶亭賸墨, 與人

 

  그대는 고서를 많이 쌓아 놓고 절대로 남에게 빌려 주지 않으니, 어찌 그리 빗나간 짓을 하오. 그대는 장차 대대로 전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요? 무릇 천하의 물건이 대대로 전해지지 못한 지 오래되었소. 요순(堯舜)도 전하지 못하고 삼대(三代)도 지키지 못한 천하를 진 시황제가 대대로 지키려 하였으니, 이 때문에 그를 어리석다 하는 것이오. 그런데도 그대는 몇 질의 서적을 대대로 지키고자 하니, 어찌 빗나간 짓이 아니겠소.

  책에는 일정한 주인이 없으니, 선행을 즐기고 학문을 좋아하는 자가 갖기 마련이오. 뒷 세대가 어질어서 선행을 즐기고 학문을 좋아하면 벽 사이에 소장된 책과 무덤 속에 비장된 책과 한문으로 번역된 먼 나라의 책들도 장차 남양(南陽)의 시대로 전해질 것이오. 만약 뒷 세대가 어질지 못하여 게으르다면 천하도 지키지 못하거늘 하물며 서적이겠소? 남에게 말을 타도록 빌려 주지 않는 것도 공자는 오히려 슬퍼했거늘 책을 가진 자가 남에게 읽도록 빌려 주지 않는다면 장차 어찌하잔 셈이오?

  그대가 만약 자손이 현우(賢愚)를 막론하고 다 대대로 책들을 지킬 수 있다고 여긴다면 이 또한 크게 빗나간 짓이오. 제왕(帝王)이 나라를 처음 세워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이를 계속 이어 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오. 그러므로 법으로써 밝히고 덕으로써 거느리고 위용으로써 보여 주지 않는 것이 없었지만, 뒷 세대가 오히려 이를 실추시켜서 제대로 계승하는 경우가 없었소. 관석화균(關石和鈞)4)을 하(夏) 나라 자손이 대대로 지켰더라면 구정(九鼎)이 어찌 옮겨졌겠으며, 명덕형향(明德馨香)5)을 은(殷) 나라의 자손이 제대로 지켰더라면 박(亳, 나라 수도)의 사직(社稷)이 어찌 누차 옮겨졌겠으며, 천자목목(天子穆穆)6)을 주(周) 나라 자손이 대대로 지켰더라면 명당(明堂 제후들의 조회를 받던 궁전)이 어찌 헐렸겠소.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법을 밝혀 후세에 전하고 덕과 위용으로써 보여 주어도 오히려 지키기 어려운 일이거늘, 지금 천하의 고서(古書)를 사장(私藏)하고서 남에게 빌려주는 선행을 아니 하며, 교만하고 인색한 마음을 품고 이를 후세로 하여금 계승하게 하려고 하니, 너무도 불가한 일이 아니겠소?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仁)을 보완해 나가는 법이니, 그대가 만약 인을 구할진대 천 상자의 서적을 친구들과 함께 보아서 닳아 없어지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오. 그런데도 지금 책들을 묶어서 고각(高閣)에 방치해 두고 구구하게 뒷 자손에게 전해 줄 생각만 한단 말이오?


足下多蓄古書, 絶不借人, 何其謬也. 足下將欲以世傳耶? 夫天下之物, 不能傳世也久矣. 堯舜之所不傳, 三代之所不能守, 而秦皇帝之所以爲愚也. 足下尙欲世守於數帙之書, 豈不謬哉! 書無常主, 樂善好學者有之耳. 若後世賢, 樂善好學, 壁間所藏, 冢中所秘, 九譯同文, 將歸於南陽之世矣. 若後世不賢, 驕逸惰荒, 天下亦不可守, 而况於書乎. 馬不借乘, 仲尼猶且傷之, 有書者不借人讀之, 將若之何. 足下若言子孫無賢愚, 皆可以世守, 則是又大謬. 君子刱業垂統, 爲可繼也. 故莫不明之以法, 將之以德, 示之以容, 後世猶或失墜, 罔有承將. 關石和匀, 夏之子孫苟可以世守, 則九鼎何遷. 明德馨香, 殷之子孫苟可以世守, 則亳社何改. 天子穆穆, 周之子孫苟可以世守, 則明堂何毁. 由是觀之, 明法而垂之, 德容而眎之, 尙猶難守, 今乃私天下之古書, 不與人爲善, 挾驕吝以濟其世, 無乃不可乎.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子如求仁, 千箱之書, 與朋友共弊之可也. 今乃束之高閣, 區區爲後世計耶.  (번역은 고전번역원에서 퍼옴)




1) 진 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뒤 자신을 ‘시황제(始皇帝)’라 부르게 하고, 자신의 뒤를 잇는 황제들은 숫자로만 헤아려 2세, 3세라는 식으로 불러 만세에 이르도록 무궁하게 제위(帝位)를 전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진 나라는 불과 2세에서 망하였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2) 벽간에 소장된 책이란 서한(西漢) 무제(武帝) 때 공자(孔子)의 옛집 벽간에서 출토된 《고문상서(古文尙書)》 등의 책들을 가리킨다. 총중에 비장된 책이란 진(晉) 나라 때 급군(汲郡)에 있던 위(魏) 나라 안희왕(安釐王)의 무덤에서 발굴된 《일주서(逸周書)》 등의 책들을 가리킨다. 한문으로 번역된 먼 나라의 책들이란 아홉 번이나 통역을 거쳐야 할 정도로 먼 외국의 책들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을 말하며, 불경(佛經)이나 서학서(西學書)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남양(南陽)의 시대란 광무제(光武帝)의 치세와 같이 학문이 흥성한 시대를 가리키는 듯하다. 동한(東漢)을 세운 광무제는 남양 사람이어서 남양에는 왕기(王氣)가 서려 있었다고 한다. 광무제는 보기 드문 호학(好學)의 군주로서 태학(太學)을 일으키고 예악을 정비하였으며 학문을 장려하여 그의 치세에 경학(經學)이 다시 융성하였다.

3)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불확실한 내용을 빼놓고 기록하지 않는 것과 말을 가진 자가 남에게 타도록 빌려 주는 것을 예전에는 보았는데 지금은 그나마 없어졌구나.”라고 탄식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4) 《서경(書經)》 오자지가(五子之歌)의 네 번째 노래에, “밝고 밝은 우리 선조 온 나라의 임금이시라 법과 규칙 높이 세워 자손에게 남기셨네. 석과 균을 통용시켜 왕의 창고 풍족하더니 그 전통 실추시켜 종족 망치고 제사 끊겼도다.〔明明我祖 萬邦之君 有典有則 貽厥子孫 關石和鈞 王府則有 荒墜厥緖 覆宗絶祀〕”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 노래는 하(夏) 나라의 무능한 임금인 태강(太康)이 백성을 돌보지 않고 노는 데에만 빠져 왕위에서 쫓겨나자 그의 다섯 동생이 각각 1수씩 지어 태강의 부덕(不德)함과 나라 잃은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여기에서 석(石)은 120근, 균(鈞)은 30근으로서, 관석화균은 도량형(度量衡)의 통일을 가리킨다.

5) 덕정(德政)을 뜻한다. 《서경(書經)》 군진(君陳)에, “지극한 정치는 향기로워 신명을 감동시키니, 서직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밝은 덕만이 향기롭다.〔至治馨香 感于神明 黍稷非馨 明德惟馨〕”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것은 주(周) 나라 성왕(成王)이 주공(周公)을 이어 은(殷) 나라의 유민(遺民)을 다스리러 가는 군진(君陳)에게 훈계하면서 한 말이다.

6) 천자의 위엄을 뜻한다. 《시경(詩經)》 옹(雝)에, “제후들이 와서 제사를 돕거늘 천자는 엄숙하게 계시도다.〔相維辟公 天子穆穆〕” 한 데서 온 말이다. 이 시는 주(周) 나라 무왕(武王)이 문왕(文王)에게 제사를 올릴 때를 노래한 것이다. 즉 천자가 권위가 있어 제후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제사를 도운 것을 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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