蔡京의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채경은 하녀를 불러 향을 사르라고 명했다. 그러나 향로를 가져오는 기척이 없었다. 미심쩍게 여기고 있던 차에 옆 방 사이의 미닫이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러자 옆방 가득히 차 있던 향 연기가 자욱하게 스며들어왔다. 채경은 "향은 이렇게 사르는 것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향에 불이 붙는 순간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손님은 경탄하면서 돌아갔는데, 그때 입었던 옷에서 며칠 동안 계속 그윽한 향내가 났다고 한다. (미야자키 이치사다, 159쪽)
이는 분명 미적 충격이고, 삶을 갱신하는 예술적 감동이다. 경제적 여유와 풍부한 감수성은 언제나 이런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이런 감각에서 문화와 예술이 빚어진다.
일상적인 것, 진부한 방법에 만족하지 못하는 전위의 전사들은 새로운 충격을 갈망하며 미지의 영역을 탐색한다. 다만 이런 미적 취향과 예술적 성취가 도덕적, 역사적
책임까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새롭지만 도덕적이지 못한 경우도 있고, 소수에게는 멋진 체험이지만 다수의 고통 및 희생과 교환된 경우도 있으며, 삶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지만 결과적으로 불행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19세기 조선의 벌열가에서도 여러 가지 호사 취향이 시도되었다. 그것만 놓고 보면 매우 향기로운데, 더 큰 맥락에서 그 향기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조심스럽다. 이건 내가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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