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설과 후회가 부질없다. 경위가 어쨌거나 나는 발목 골절로, 석달 만에 같은 수술실에서 같은 의사에게 수술을 받았고, 같은 간호사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확실한 현실은 이것뿐이다. 다른 것은 모두 망상이자 덧칠에 지나지 않는다. 2월 15일부터 22일까지 만 이레를 꼬박 보낸 611호실은 나의 우주였다. 하루씩 묵고 떠난 두 사람을 빼면 함께 지낸 사람은 나 포함 5명이다. 시종 우리는 유쾌하려고 노력했다. 예기치 않게 궤도를 이탈하지 않았으면 겪지 못했을 일이고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이레 간의 삶은 또한 우주의 필연이자 인생의 운명인 것이다. 나는 4월 꽃 필 때 보자 했고, 이들은 엘레베이터 앞에 까지 와 퇴원하는 날 배웅했다. 또한 만나고 헤어지는 일인지라 마음이 젖어들었다.
박상*(78세), 한*옥(74세) 부부. 주흘온천이 있는 함경도 경성에서 온 부부이다. 아바이 고향은 강원도 인제이고, 아마이 고향은 아오지탄광이 있는 경흥이다. 네 아들 중 셋이 한의사로 많이 소개된 분들이다. 아바이는 꼬장꼬장하고 아즈마이는 가끔 웃기만 하고 말이 적다. 학식이 많지 않아 보이는 아즈마이에게서는 무언가 함경도 분위기가 묻어나온다. 아주 소박한 샤먼으로 보였다. "함경도에도 무당이 많아요?" 질문에, 대뜸 "많소!" 하고 대답한다. 똑같은 질문을 아바이에게 하자,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이러한 대답의 차이는 생활의 심리 저변과 눈에 보이는 것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다.
방#(52세). 미국 교포 출신으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박학다식하고 목소리는 낭랑하다. 생각은 트여있으며 토론하기를 좋아한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눈 만큼 배웠다. 아버지가 외교관이었던 덕분에 어려 스위스 베른에서 2년을 배웠다. 그가 들려준 스위스, 그리고 베른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워, 하루 머물다간 환자의 아내 되는 분도 관심을 보였다. 미술아 전공이라 감성이 섬세하면서도, 역사와 사회,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정에 두루 밝다. 햄버거, 피자, 케잌 등을 몹시 좋아한다. 디스크수술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당뇨가 발견되어 낙심이 이만저만 아니다. 나폴레옹을 열렬히 숭배했던 자크 루이스 다비드(1748~1825 / 옛날 <완전정복>이라는 참고서의 표지 그림을 그린)의 화풍을 좋아하며, 한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공부하여 한국의 근현대 문학에 대한 지식은 극히 초보적이다. 비 오는 날 금지된 우정의 말보로를 함께 했다.
바디(32세). 스리랑카에서 온 노동자로 일하다가 손을 다쳤다. 무통주사 신청을 못하는 바람에 수술 후 2,3일 통증으로 크게 고생했다. 스리랑카 남부 Galle와 Matara 사이에 있는 마을이 고향이다. 한국에 온 지 5년이 다 되어 5월에는 고향에 가야 한다. 스리랑카 북부는 인디아에서 건너온 타밀족이 많이 살며(15%), 인구의 대부분은 싱할리어를 사용한다. 휴일이면 함께 일하는 친구들(네팔, 방글라데시, 파키스튼 등)이 대거 찾아온다. 사물함에 가장 많은 음식이 쟁여져 있다. 고향에 홀어머니와 약혼자(25세)가 있다. 월급은 140만원인데, 야간 근무와 휴일 근무까지 하면 220만원까지 받으며, 지금까지 5천만원을 모았다고 한다. 순전히 몸을 움직여 번 돈이다. 우리 나라에는 인도에서 출발한 불상과 불탑 등이 이 스리랑카를 거쳐 들어오는 불교 해전 설화가 많다. 바디는 그 불상의 현현이 아닐까! 우리는 스리랑카로 놀러가기로 했고, 바디는 환영한다고 했다.
방샘이 바디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