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빵의 허상, 조선시대도 딱 이랬으니, 결국 그게 망국의 원인이었다. 외교관은 현지 전문가로 다양하게 양성 채용해야 한다. 지금처럼 특정 언어에만 능통한, 극소수의 엘리트들만으로 외교관을 양성하게 되면, 끝내는 수동적인 종속외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란에도, 부탄에도, 동티모르에도 그 언어와 문화를 아는 전문가들을 외교관으로 채용하거나, 그런 전문가로 양성하라. (살다보니 조선일보 글을 가져올 때가 있네.)
이란은 친구라면서… 이란語 할 줄 아는 외교관이 한명도 없다 (조선일보, 5월 4일)
2일(현지 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의 사드아바드 줌후리궁(宮)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공동 기자회견은 순차 통역 방식으로 진행됐다. 양국 대통령이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 통역자들이 이를 이란어나 한국어로 옮겼다. 이란 측 통역자는 평양 유학파로 주한 이란대사관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직업 외교관이었다. 그는 한·이란 고위급 회담에 빠지지 않는 한반도 전문가이다. 반면, 우리 쪽 통역자는 이란 중부 도시 이스파한의 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현지 교민이었다.
국가 정상 통역은 국가 최고 정책 결정자의 입과 귀에 해당하는 역할로, 국정 전반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서 통역 훈련이 돼 있는 외교관이 주로 맡는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에는 이란어를 구사하는 외교관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때마침 고학력 지역 전문가가 있어 우리 대통령의 발표를 남의 나라 외교관이 통역하는 최악의 상황은 겨우 피했다.
이란은 핵개발 의혹으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받아 우리의 대(對)중동 외교 우선순위에서 뒤처져 있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주요 에너지 수입국이자 경제 협력국이다. 인구 규모가 8000만명에 이르는 중동 2위의 경제 대국이기도 하다. 경제 제재로 관계가 일시 소원해졌다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외교 대상국이다. 이웃 중국과 일본이 이란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이 지역을 잘 아는 외교관을 다수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발언을 끝내면서 이란말로 "두스트 바 함러헤 쿱(친구이자 좋은 동반자)"이라고 했다. 그 순간 로하니 대통령과 이란정부 장관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현지 언어 구사 능력이 외교 활동의 전부는 아니지만, 언어의 기초가 없는 외교는 깊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외교부는 눈앞의 상황만 볼 것이 아니라 흔히 '비주류'로 분류하는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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