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신경숙의 표절 문제가 검찰로 넘어가더니, 올해엔 조영남의 그림 사건을 검찰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예술이 검찰의 관심을 받은 이유가 이념이었다면, 지금 검찰이 예술에까지 관여하는 사안은 경제이다. 그런데 참 우스운 일이다. 조영남이 그 그림을 팔아 돈을 번 것도, 미술계의 관행이라 우긴 것도, 진중권이 나서 관행이 맞다며 거든 것도 우습지만, 가장 우스운 것은 검찰이 해결사로 나섰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검찰이 무슨 문제든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야말로 만병통치검, 검찰만능주의 사회이다. 사람들은 명쾌하고 확고한 법적 판결을 기대한다. 법적 판결이 내려지면 사안은 단락이 지어진다.
이유와 경위가 어떻든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의 핵심은 '예술 창작의 고유성과 범위', 그리고 '예술작품의 상업적 거래와 그에 따른 도덕적 책임과 위법'이다. 성숙한 사회라면, 그 다음에는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 시대와 장르에 따른 예술 창작의 범위와 변화가 논의의 1차 주제이어야 한다. 조영남이 화투 그림들을 전시하고, 그것들을 지인들에게 선물하거나 공공기관 등에 기증했다 해도, 문제는 발생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법 영역으로까지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림을 거래했고, 거기서 많은 유무형의 이익이 발생했다. 도덕적 책임이나 예술가의 명예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이익과 손해가 발생하는 상거래이기 때문이다. 매수 행위는 일종의 투자, 또는 투기이다. 부동산 거래와 같은. 이에 서둘러 조영남은 그림값을 돌려주고 사건을 무마하려 하고 있다.
흥미로운 일이다. 조영남은 재주가 많고 계산이 뛰어난 이 시대의 대표적인 상업예술가이다. 본인도 인정한다. 나도 그걸 뭐라 할 마음은 없다. 대작 화가는 재주와 경력에 비해 그것을 파는 능력은 없는 사람이다. 순수한 것일까, 무능한 것일까, 아니면 불운한 것일까? 매수자들, 그저 투자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사두면 이익이 발생할 것이라는 말과 조영남이라는 이미지에 현혹된. 어쩌면 언제나 득실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그 바닥의 상인들일지도 모른다. 검찰, 한편으로는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음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것이고, 한편으론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이 한심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신경숙과 조영남으로 발생한 이 문제를 점검과 논의의 소중한 계기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툭하면 아무 사안이나 검찰에 의뢰하고 기대하는 이 싸구려 근성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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