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향기 (한병철,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진단이 될지는 모르지만, 내 삶의 문제에 대한 진단으로는 유효하다. 나는 세계를 잃었다. 내가 디디고 기대고 의미를 찾고 나를 투영하던 세계 – 가족, 가문, 도덕, 국가 – 는 차례로 붕괴되었다. 남은 것은 ‘나’밖에 없다. 내가 영원한 절대라고 믿었던 것들은 파탄 났다. 그건 나의 환상이 깨진 것이고, 그래서 환멸이 발생한 것이다. 세계는 아름답거나 정의롭지 않다. 그러니 그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나 거기서 성공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러니 성취를 고무할 수 없고, 성공에 대한 열정을 품을 수가 없다. 나는 오래 전부터 불면에 시달려왔다.
나를 지탱해주던, 의미와 가치의 둥지가 되어주던 세계는 파탄 났다. 아버지와 가정(가문), 학문과 대학, 도덕과 종교, 그리고 결정적으로 민족과 국가. 이런 세상에서 뭘 이룬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지? 나는 부정한다. 하지만 혼자 부유하지 못한다. 나의 성취와 노력과 열정을 받아주고 인정해주는 세계는 이제 없다. 점진적 붕괴, 내가 이 세계를 재 건립할 능력은 없다. 당연히 그럴 의지도 없다. 나는 끊임없이 작고 약한 나로 회귀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시간을 살면서 나는 반론이나 비판이 불가능한 부조리의 해일에 직면했다.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의미를 잃어갔다. 10년이 지났을 때 나의 주머니 속에는 의미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를 지탱해주던 이성과 관용, 배려와 용기,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지렛대가 쓰러져버렸다. 두 정부 내내 나의 정서 반응은 ‘어이없음’과 ‘말문 막힘’이었다.
철학자들에게서 종종 보이는 명쾌한 논리의 단순함, 이들은 태생적으로 논리를 추종하는데, 이 논리는 복잡한 현상을 잘 설명하지만 종종 자기 함정 속에 빠진다. 원자화된 시간은 원자화된 개인들과 관련이 있다. 신화의 시간 속에서 개인은 영원과 절대에 예속되었고, 역사 시대에는 이념과 제도에 복속되었다. 필자는 무지의 토대 위에 서있던, 잔혹한 폭력이 자행되던 신화시대와 역사시대를 지나치게 낭만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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