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8년 제주도에서 풍랑을 만나 명나라에 표착했다가 돌아오던 최부는 5월 6일 기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맑음, 석하에 이르렀다. 남쪽에 五花城이 있는데, 당태종이 고구려를 치러 갔을 때 설인귀가 쌓은 것이다. (晴 行至石河 南有五花城 乃唐太宗征高句麗時薛仁貴所築也.)
2017년 7월 1일 나와 임문성은 秦皇島市 山海關區 石河鎭 古城村을 찾았다. 沙河 가에 성의 잔벽이 남아있었고, 앞에는 '古城'이라 새겨진 비석이 서있었다. 뒷면에는, 당태종 동정시에 세운 것이며, 다섯 성이 연환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화성이란 이름이 생겼다는 설명이 있다. (1982) 그 앞 밭에서 일하던 촌로는, 이 성은 보통 高麗城으로 불린다고 했다. 이 성의 위치와 내력에 대한 설명은, 마치 보고 쓴 것처럼 최부의 기록과 일치한다. 석하진에서 고성(촌)까지의 거리는 직선으로 2.1k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