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로 지리

碣石山과 文筆峰

검하객 2017. 7. 8. 00:16


  연행사들은 撫寧을 지날 때면 으레 남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 碣石山과 文筆峰을 보며 특별한 감회에 젖었다. 갈석산은 만리장성의 동단을 비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표지가 되는 산이고, 文筆峰은 자연스럽게 문장가 韓愈를 연상시키곤 했다. 갈석산(해발 695m)과 (五峯山) 문필봉은 서로 붙어 있으며, 두 산이 있는 고을 이름은 진황도시 昌黎縣이다. 

  207년 9월, 烏桓族 정벌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고죽에 이른 曹操(155~220)는 <觀滄海>라는 시를 지었다. 이 시의 단순하기 짝이 없는 첫 두 구절, "東臨碣石, 而觀滄海"는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시는 사실 두 구절이면 족하다. 갈석산의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지만 최근 창려의 갈석산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듯하다. (* 이는 만리장성의 동단, 만리장성의 동단 문제는 고조선의 강역, 나아가 한사군의 위치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단서이다. 이 문제에 대해 중국 학자들은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갈석산은 전후 여러 황제들이 올랐던 산으로 유명한데, 중원 서쪽에 주로 도읍했던 고대 국가 황제들에게 바다 체험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문필봉이란 이름은 1641년 이곳을 찾은 山海關石道 范志完의 시구 "天生文筆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유는 郡望昌黎를 자처하여, 사후 창려는 한유를 기리는 주요한 장소가 된다. 하지만 한유가 왜 창려의 군망을 자처했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撫寧에서 두 산까지의 직선 거리는 대략 15,6km이니, 특별히 악천후가 아닌 이상 육안으로 잘 보였을 것이다. 7월 1일 갈석산을 찾았을 즈음, 석양이 갈석산 서쪽 능선 위에서 휴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덩치도 제법 있지만 뼈대의 굵기가 장난이 아니다. 오봉산 남쪽 기슭에는 넓게 과수원이 들어서 있다. 조조가 갈석산에 올라 처음 바다를 보고 시를 지었던 그 나이, 나는 지친 발을 겨우 끌며 아래서 그 산을 바라보았다. 그때 조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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