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아버지와 아들 (허클베리핀을 읽다가)

검하객 2012. 10. 15. 11:32

묘한 관계다. 고골리는 취학 전 거의 매일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다. 학교 가서 급우에게 처음 물어본 말이 "넌 아버지에게 안 맞니?" 였을 정도다. 카프카 문학의 기원이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에 있음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했다. 길동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아버지와 화해한다. 길동의 최후 행동은 아버지의 무덤을 파온 것이다. 제사권, 장자권의 획득인 셈이다. 홍길동의 행동은 유교사회의 도덕률이 얼마만큼 소설을 통제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 최고운은 아버지에게서 버려지고, 끝내 아버지와 화해하지 않는다. 최충은 아들을 버렸고, 최치원도 아버지를 버렸다. 물론 여기에는 약탈혼 등의 풍속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구도를 단순화하면 최충/최치원의 관계는 오이디푸스 부자와 홍길동 부사 사이에 있다.   

 

 쇄골뼈가 부러진 다움에게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권하다가 앞의 70여 쪽을 읽었다. 허클베리핀의 아버지는 폭군이다. 헉은 그런 아버지를 끔찍히도 싫어하여 영원한 탈출을 시도한다. 이들 부자 사이에 어떤 연민이나 배려 등은 보이지 않는다. (태혜숙 옮김, 중명, 1999)

 

  "아버지를 보지 못한 지 근 1년도 넘었지만 마음만큼은 더할나위 없이 편했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술에 취해 있지 않을 때는 늘 나를 때렸기 때문에, 아버지가 옆에 있을 때면 나는 숲속으로 도망치곤 했다." (27)

 

 "1인치 가량의 눈이 덮여 있는 땅 위로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서 커다란 못으로 만든 십자가가 왼쪽 구두 뒤꿈치에 붙어 있었다. --- 그날 밤 촛불을 켜고 2층 내 방으로 들어가자 아버지가, 아버지 당신이 방 안에 앉아 있었다." (35,6)

 

 "내가 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뒤돌아보지 아버지가 있었다. 늘 매만 맞고 지낸 터라 아버지만 보면 겁부터 났다."(37)

 

 "자기 아비 앞에서 건방진 얼굴을 하고 아비보다도 자기가 위인 양 말대답이나 하도록 아들을 길러내는 자식들을 내가 그냥 둘 줄 알고. --- 네 놈은 읽을 줄 안다는 거지? 설마 했더니 정말이네, 이놈이. 야 이놈아, 뉘 앞이라고 네놈이 큰 소리야? --- 널 해치우기 전에 우선 그 잘난 척하는 기세를 꺾어놓고야 말겠다. 거들먹거리는 꼴이 구역질 난다."(38,9)

 

 "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담배나 피우고 낚시질이나 하며 책도 안 읽고 공부도 하지 않는 생활은 어느 정도 즐거운 일이었다. --- 과부댁이 싫어했으므로 욕지거리를 그만두었더랬는데 전혀 반대할 기색이 없는 아버지와 같이 살다보니 또 다시 그 욕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숲은 퍽 마음에 들었다."(44) 부자의 폭력과 야만의 성격은 서로 닮아있다. 그건 내림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태생부터 서로 위협적이다. 야생의 상태에서 이들은 서로를 확인할 수 없고 알지도 못한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알지 못하는, 내 먹이와 자리와 암컷을 빼앗아갈지도 모르는 젊은 수컷일 뿐이다. 실제로 야생에서 늙은 수컷은 젊은 수컷에 의해 축출되고 죽임당한다. 헉의 아버지는 마치 늙은 수컷 사자가 어린 수컷 사자를 대하는 것처럼 아들 헉을 대한다. 때리면서도 두려워한다. 그가 글을 읽을 줄 아는 게 못마땅하고, 자기보다 젊은 게 두렵다. 헉도 아버지를 연민하거나 동정하지 않는다. 서로 닮았지만, 그것이 친밀감이나 일체감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