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가 만들어지고 그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글을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어 숨겨진 사실을 알리거나 독자의 변화와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벽에 붙이는 방법이 애용되었다. 과거 합격자 명단을 벽에 붙이는 걸 榜文이라 했고, 檄文도 주로 벽에 부착되었다. 왕이나 관리의 잘못을 적어 몰래 벽에 붙이는 건 壁書 또는 掛書라고 했다. 벽서나 괘서는 주로 익명으로 위정자의 잘못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정치적인 큰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범죄자의 인상파기를 그려 수배하는 것도 벽에 붙이는 방식으로 이용되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영화나 공연은 포스터를 벽에 붙이는 방식으로 홍보되었고, 지금도 선거 때에는 출마자의 사진과 공약 등이 벽에 붙여진다. 민주화 시절에는 대자보가 유행했고, 지금 그 자리에는 학원 등의 광고 포스터가 가득하다.
얼마 전 베란다 흡연 문제로 엘리베이터에 글을 붙인 뒤 일어난 이야기는 잠깐 했다. 생각해보니 10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10년을 살고 예전 아파트를 떠나올 때, 그래도 10년이나 살았는데 이웃한테 인사는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일이 찾아다니기도 뭣하고, 또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1801호 아무개네가 이사간다는 사실을, 그간 고마웠고 평안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몇 글자 적었다. 마침 우리가 살던 아파트가 팔리지 않은 상태여서, 그 사실도 덧붙여 엘레베이터 안에 붙였다. 아파트 같은 라인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간으로는 엘레베이터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이사를 왔는데, 며칠 뒤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붙인 글의 연락처를 보고, 우리가 살던 아파트를 살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로 인해 아파트 매매가 이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사는 요즘, 세대의 출입이 무상하여 누가 오고 가는지도 모르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소한 한 엘레베이터를 이용하는 같은 라인의 이웃들에게 무언가 알리거나 부탁하고 싶을 때, 얼마간라도 마음을 나누고 싶을 때, 엘레베이터 벽에 글을 붙여보면 어떨까? 이웃 사이의 소통이 최소화되어가는 지금 이를 탄식하기 전에, 엘레베이터 통신이라는 오랜 방법을 이용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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