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음식

장염

검하객 2014. 10. 27. 12:55

 속수무책. 일요일 새벽 2시, 응급실에 가기로 결정했다. 혈관 주사, 금방 진정되는 듯한 느낌. 일요일, 장은 진정되었으나 오한이 온몸을 덮어썼다. 전기담요 속에 들어가 땀 흘리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저녁, 매실과 도라지 발효액을 뜨거운 물에 타서 한 컵씩 정말 맛있게 마셨다. 12시 즈음, 다시 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속수무책,  생리와 의지의 결별! 의사나 약사나, 굶는 게 제일 좋단다. 눈앞에는 계속 곰탕과 깍두기가 가물거린다.  오늘같은 날은 다음과 같은 기사가 유난히 눈에 띈다. 기사는 괜찮은데, 돼지간볶음 사진은 영 아니다.

 

  인생을 요리하는 문학 (중앙일보, 10.27)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침이 꼴깍 넘어갈 때가 있다. 음식 먹는 장면이 나올 때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 등장하는 돼지간볶음이 그런 음식이다. 누구나 소설을 읽고 나선 '승리반점'으로 달려가 손으로 탁자를 치며 돼지간볶음 한 접시에 황주를 주문하고 싶어진다. "황주는 따뜻하게 데워서"라는 말과 함께.
 소설은 1950년대를 전후로 중국 성 안의 생사(生絲)공장에서 일하는 허삼관이라는 남자가 매혈(賣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인을 얻기 위해, 사고 친 아들의 보상금을 위해, 기근기에 가족에게 국수를 사 먹이기 위해 그는 피를 판다. 급기야는 간염에 걸린 큰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성을 돌아가며 피를 판다.
 이 허삼관이 매혈을 한 뒤 먹는 음식이 바로 돼지간볶음과 황주 두 냥(兩)이다. 돼지간볶음은 돼지 생간에다 각종 채소와 중국식 양념장을 넣고 볶아서 먹는 요리다. 황주는 황색 빛깔이 감도는 술로 백주와는 달리 도수가 10여 도로 낮다. 허삼관은 이 돼지간볶음이 보혈을 돕고 황주가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에게 돼지간볶음은 단순한 보양식 이상이다. 이 요리를 먹는, 인생에서 가장 서글프고 비참한 순간이야말로 그가 유일하게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가슴은 쫙' 펴고, '의기양양한 모습'이 되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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