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 1292~1293에 걸쳐 郭守敬의 주도로 개설된 운하로, 명칭은 쿠빌라이의 명으로 지어진 것이다. 개착 당시 통혜하는 昌平县 白浮村의 神山泉에서 시작하여 瓮山泊(지금의 昆明湖)을 거쳐 積水潭과 中南海에 이르렀다가, 文明門(지금의 崇文門)으로 빠져나가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 뒤 지금의 朝阳区區 杨闸村에서 동남쪽으로 꺾어진 뒤 通州 高麗莊(지금의 張家灣村)에 이르러 潞河에 합류했다. 길이는 82km이다. 瓮山泊에서 积水潭에 이르는 하천을 원대에는 高梁河라 했다.
통혜하 개착 후, 조운선이 적수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적수담은 지금의 什刹海와 後海 일대를 아우르는 대운하의 종점 구실을 하여, 온갖 선박이 몰려들어 장관을 연출했다. 원말 명초 전란과 홍수 등으로 상류가 없어졌다. 이로부터 통혜하는 東便門에서 북운하에 이르는 20km 구간만을 지칭하게 되었다. 유량을 통제하여 선박의 통행을 조절했는데, 이를 위해 24개의 갑문을 설치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广源闸、西城闸、朝宗闸、海子闸、文明闸、魏村闸、籍东闸、郊亭闸、杨尹闸、通州闸和河门闸.
명대에는 御河(玉河)로 개칭되었다. 1956년 성 안 구간은 모두 하수도가 되어 갈수록 수질이 악화되었다. 南河沿大街 남쪽 어구에 截流井을 설치하여 오수를 처리하면서 수질이 개선되고 있다. 大通河라고도 했다.
玉河源出玉泉山, 經皇城大內中, 出都城東南爲大通河, 至高麗莊, 與桑乾河俱入白河. 海子有二, 一在皇城西三四里, 諸山之水皆匯焉, 一在城南, 卽域養禽獸之所. (최부, 표해록 2, 4월 23일, 1488)
雨餘塘水夜來多, 一簇帆檣次第過. 多小雲橋齊擧閘, 漕堤遙接大通河. (조상경, 1681~1746, 鶴塘遺稿 册 2, 燕槎錄, 「次太液池八絶」의 부록으로 실린 君敬의 원시 제 5수, 1731)
통혜하 하류 (연등불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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